[조이 김의 영화세상] 이웃의 아름다운 날(A Beautiful Day in the Neighborhood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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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삼십여년전 돌지난 첫째를 데리고 시카고에 왔다. 남편이 직장에 가면 딸과 아침부터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몬트로즈 길에 위치한 아파트는 입주자가 전부 한인이었고 동네는 인도 사람, 중국 사람, 이민자들이 주였다. 미국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외로움과 향수병에 시달렸다. 당시 채널 11에서 하는 두개의 프로 “세서미 스트릿”과 “미스터 로저스의 이웃” 은 내가 미국을 들여다보는 창이었다. 온화한 인상의 미스터 로저스는 늘 미소지으며 쉽고 단순하게 아이들의 눈높이로 인생에 대해 얘기했다. ‘트롤리’라는 장난감 기차가 삐삐거리며 지나가고 친절한 ‘레이디 에벌린’, 스피디 딜리버리를 하는 우체부 ‘미스터 맥필리’, 소심하고 수줍은 타이거 인형 ‘대니얼’과 권위적이지 않은 ‘킹 프라이데이 13세’등 미스터 로저스의 이웃은 따뜻하고 이해심 많고 한결같았다. 아주 오랫동안 미스터 로저스는 나와 아이들의 좋은 아저씨였다. 1998년 11월, 저널리스트 ‘톰 주노’가 ‘프레드 로저스’를 인터뷰하고 에스콰이어 잡지에 “Can You Say… ‘Hero’?” 라는 기사를 싣는다. 가슴에 분노를 담고 용서를 몰랐던 그는 로저스를 만나면서 사람에 대한 애정과 이해, 용서와 연민을 배우게 된다. 영화는 주노의 칼럼을 토대로 로저스가 그의 삶에 끼쳤던 강력하고 선한 영향력을 차분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1998년, ‘로이드 보겔’(톰 주노의 영화속 이름)은 잘나가는 저널리스트.  아내 ‘안드레아’와 젖먹이 아들을 두고 바쁘게 산다.

 

어렸을 때 자신과 병든 엄마, 여동생을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간 아버지를 증오한다. 여동생의 결혼식때 나타난 아버지를 보고 주먹다짐까지 하고 코에 부상을 입는다. 로이드는 편집장이 미스터 로저스를 인터뷰하고 400자 기사를 쓰라고 명하자 탐탁치 않아 한다.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피츠버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그는 미스터 로저스가 녹화하는 장면을 지켜본다. 처음 만난 미스터 로저스는 로이드의 코를 보고 걱정하며 진심어린 관심을 보인다. 과거의 인터뷰처럼 상대의 명성과 사회적 영향력을 파고 들던 로이드는 미스터 로저스의 인간적이고 솔직한 대답과 아버지에 대한 상처와 분노로 괴로운 자신을 이해하고 다독거리는 그에게 당황하고 반발한다. 자신을 찾아 온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고, 로이드는 아버지가 시한부임을 알게 된다. 어찌할 줄 모르던 로이드는 피츠버그로 미스터 로저스를 찾아가는데 녹화 현장에서 정신을 잃는다. 로저스의 집에서 하루를 묵은 로이드는 집으로 돌아 와 아버지와 화해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기사로 쓴다. 원래의 400자는 1000 단어를 넘고 에스콰이어 잡지 커버스토리로 실린다. 아버지가 죽기 전 미스터 로저스가 아버지 집을 방문하고 식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미스터 로저스 역의 ‘탐 행크스’의 연기가 놀랍고 훌륭하다. 따뜻하고 다정한 표정과 목소리와 동작들이 진실되고 위로를 준다. 위인의 전기가 아닌 상처와 분노를 가진 한 남자가 선하고 자비로운 인생 선배를 만나 성장하고 발전하는 이야기다.  이민 초창기, 젊은 엄마와 어린 딸에게 우리는 모두 삶에서 슬픔과 분노, 질병과 이별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미스터 로저스는 든든한 이웃이었다. 사는 것이 녹록치 않은 요즈음 친절과 선함과 용서와 화해를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