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에서···] 무례함 그리고 불편함

708

 

홍다은 편집국 차장

지난 5년간 함께 했던 나의 여기자 동료들은 정도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경험한 것들이 있다. 바로 무례함으로 인한 불편함이다. 취재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동료 기자들에게 ‘아가씨’, ‘노랑머리’라 부르거나 술을 권하며 하트를 날리는 등 황당하고도 불쾌한 일들을 겪고 돌아와 울분을 토했던 장면도 잊혀지지 않는다. 서로 다르고 모르니까 어떻게든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해도 결국 ‘무례함’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취재 요청을 받고 취재를 했는데 기사가 나갔는지 확인하는 것은 요청한 사람들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확인도 않고 기사가 나갔는지를 물으면서 게다가 기사까지 보내달라는 말로 기운을 빼는 분들도 있다. 더욱이 취재 후 기사가 나가기 전에 미리 받아 볼 수 없겠느냐고 묻는 황당한 사람들도 있다. 기관이나 단체의 리더라면 “저는 신문 안봐요”라는 말을 기자에게 쉽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아무리 평소에 언론에 관심이 없고 신문을 보든 안보든 ‘선택의 자유’가 있다 할지라도 적어도 리더라면 동포사회 돌아가는 정도쯤은 파악하는 것이 기본 아닐까? 이런 분들에게는 신문을 안보다가도 최소한 자신이 몸담은 단체의 기사가 났다면 찾아봐야 한다는 게 당연한 것 아닌지 묻고 싶다.

몇 번 마주했다고 누군가가 당신의 신분이나 가족관계, 결혼여부, 직업, 외모, 월급 등 극히 개인적인 사안을 묻거나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어떨까. 충분한 대화와 만남으로 서로 신뢰관계를 구축한 관계에서도 매우 조심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거기서 일해요?”, “오래 버티시네요”, “얼굴 보기 힘드네요 취재 안다니나봐요” 등의 말도 종종 듣는다. 이럴 땐 “제가 버티는데 보태주신 것 있습니까?”, “신문도 안보시고 이야기 하시나봐요”라고 콕 쏘아 붙이고 싶은 심정이다.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서로에게 힘이 되주고 격려해줘도 모자른 판에 의도했던 아니던 상대방을 깎아내버리는 말은 삼가야 하는 건 상식일 것이다.

개인적인 질문이 불편하니 아예 말을 걸지 말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서로를 향한 관심을 표현하고 좀더 알아가며 때로는 도움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대화는 필요하다. 다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막 던지는 말들로 인해 상대방이 상당히 불편할 수 있다는 점을 짚고 싶을 뿐이다.

어떤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내 감기가 상대방 암보다 더 아플 수 있으며, 상대방의 감기가 내 암보다 더 아플 수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는 아무렇지 않은 말, 행동, 태도, 요청일 수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마음에 비수로 꽂힐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반대로 말 한마디, 표정하나로 위로와 격려가 될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지긋지긋해!’(Sick and tired!)라는 말보다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는 말이 나오는 시카고 한인사회가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