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장 귀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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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한국에서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는1907년 대한제국을 점령한 한국통감부가 서울에 건설한 형무소로 한일 병합 이후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어 온갖 고문을 받았던 곳으로 지금은 역사 박물관이 되어 일제치하 당시의 참혹함을 알리는 역사적 교훈의 현장이 되어있습니다. 미국에도 2차 대전 당시 유태인들이 당했던 홀로코스트를 기리는 박물관들이 각 주요 도시들마다 세워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갈 때 마다 항상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약 나에게 이런 고통과 환난이 닥쳐 온다면 나는 견딜 수 있을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인두로 지지고, 거꾸로 매달아 고춧가루 물을 먹이고, 손톱 밑에 대나무를 박아 대면서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회유할 때 기꺼이 그런 고난을 신앙과 믿음으로 감당 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이제 곧 그의 제자들을 떠나셔야 할 것을 아셨습니다. 주께서는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하신 후 하늘로 승천하시어 인류를 구원할 구속의 계획을 이루셔야 하셨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그들의 스승이셨던 예수님 없이 홀로 서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앞길도 주님이 가셨던 고난과 핍박의 길이 놓여져 있음을 주님께서는 내다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한복음 16:7)

이곳에서 주께서 보내시겠다 약속하신 보혜사는 누구입니까? 한글 성경 ‘보혜사’(保惠師)는 ‘은혜를 보존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의 한자어입니다. 헬라어는 ‘파라클레토스’로 신약에서 오직 요한만이 사용한 단어(요 14:26; 15:26; 16:7; 요일 2:1)로 이것은 “~곁에”를 뜻하는 전치사 파라(para)와 “부름받은” 혹은 “부름받은 자”를 뜻하는 형용사 클레토스(kle-tos)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문자적인 의미는 “~곁에 있도록 부름을 받은 자”가 됩니다. 이를 성경도 각 번역판에 따라 다르게 번역했는데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위로자’(comforter)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영어 단어는 ‘Com’ (함께)과 ‘fort’(요새) 그리고 행위자를 나타내는 접미사 ‘er’이 합성된 단어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어떻게 계시는가? 우리의 든든한 요새가 되시는 분. 단순히 등을 다독이시고, 눈물을 닦아 주시는 정도의 위로자의 의미를 훨씬 뛰어 넘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힘이 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높이 올리시며, 그 어떤 세속 물결이 온다할 지라도 그것을 막아 주시는 분 그것이 우리의 보혜사, 파라클레토스, Comforter,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환난과 핍박을 당할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떠난다 할지라도 너희에게 보혜사, comforter를 보낼 것이다. 그는 너희와 항상 언제나 함께하실 분, 우리의 요새가 되셔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따뜻하게 품어 주실 분이시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 바로 성령님이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초대교회 사도들이 당했던 것과 같은 고난과 핍박이 닥쳐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일상에서 당하는 삶의 모든 문제들도 사도들이 직면했던 고난과 같습니다. 스스로는 해결 할 수 없는 삶의 어려운 문제들이 밀려올 때 아무도 대신 질 수 없는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 우리에게 이런 질문이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왜 하나님은 안 보이시는가? 그런 순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보혜사, 파라클레토스, comforter 되시는 성령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여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2-14) 우리에게 고난이 닥칠 때 그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복입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의 때가 주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의 가장 귀한 선물, 보혜사 곧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은혜의 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