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순서(소명/중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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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

 

누가 구원받는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부분 복음주의자의 대답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거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거나, 아니면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요구한다. 말하자면 예수님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정보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언제 어떻게 태어났는지, 부모는 누구인지, 언제 어떻게 죽으셨는지, 죽으신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을 알아야 한다. 예수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이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 복음주의자의 논리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어떻게 습득할 수 있는가? 당연히 성경 말씀을 통해서이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면 구원받는다고 대답한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성경 말씀)을 전파해서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질문이 생긴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어, 아직 어머니 배 속에 있는 태아는 어떠한가? 태어나기는 했지만, 아직 언어를 깨우치지 못한 유아는 어떠한가? 이들이 언어를 통한 성경 지식을 습득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면 이들은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이 되고 구원받을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물론 이런 결론은 불편해 보인다. 그래서 복음주의자들은 대체로 유아 때 죽은 사람은 자동으로 천당에 간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부모의 신앙에 의해서 아이의 구원이 결정된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한편 지적으로 복음을 인지할 수 없는 사람은 유아에 한정되지 않는다. 성인이라도 복음에 대한 내용을 지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예를 들어, 아이큐가 아주 낮은 지적장애 자의 경우 아무리 성경을 가르쳐도 그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정상인이라고 해도 인식의 방편이 마비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사람은 보통 오감을 통해서 인식한다. 어떤 사람이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다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없는 상태로 태어나서 성인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비록 이 사람이 지적 능력이 훌륭하다고 해도 언어로 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얻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면 이런 자들의 구원은 어떻게 되는가? 이런 자들은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단 말인가?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할 수 없으니 구원받지 못한다고 결론 내려야 할까?

다른 경우를 생각해 보자. 지적능력도 있고 인식의 방편도 정상인 사람이 있다. 그런데 성경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예수님에 대한 정보가 없다. 이 사람은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는가? 세상 사람들이 흔히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해 하는 질문 중에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은 예수를 못 믿어서 지금 지옥에 있단 말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한 적이 있지 아니한가? 그들에게 구원받을 가능성은 전혀 없는가? 구약 시대에 살았던 사람은 어떻게 구원받는가? 그들도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기에 구원받는가? 그들에게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은 예수님이 언제 어디서 누구를 부모로 해서 태어날지 몰랐을 것이다.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죽을지도 몰랐을 것이다. 심지어 구주의 이름이 예수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죽고 부활한 후 승천할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예수님에 관한 어떤 정보를 갖고 있었단 말인가? 예수님에 관하여 우리가 아는 정보의 1%도 못 미치는 정도의 내용만을 알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먼 훗날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떤 분이 나와서 그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정도의 예측만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의 지식이 있는 구약의 사람들에게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기에 구원받는다는 명제를 적용할 수 있을까? 아니면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세대별로 구원의 방편이 달랐다고 주장해야 할까? 비슷하게 하나님은 각 사람이 처한 삶의 정황에 따라서 구원의 기준을 달리한다고 해야 할까? 예를 들어, 유아에게 적용하는 구원의 기준, 지적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적용하는 구원의 기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용하는 구원의 기준, 구약의 이방인에게 적용하는 구원의 기준,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성인에게 적용하는 구원의 기준,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유아에게 적용하는 구원의 기준, 성경 말씀을 듣는 신약의 사람에게 적용하는 구원의 기준이 모두 다르단 말인가?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