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순서(소명/중생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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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

-이어서-

하지만 모든 신자가 반드시 중생의 순간을 인지할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은 죄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나서 그 씨앗이 성장하지만, 주어진 환경과 각자 삶의 정황 속에서 그 씨앗의 열매는 차이가 난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어린아이가 맺는 죄의 열매와 성인이 맺는 죄의 열매가 다를 것이다.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맺는 죄의 열매와 21세기 최첨단 사회에서 여러 사람과 부대끼며 사는 사람이 맺는 죄의 열매의 크기는 다를 것이다. 죄의 열매가 작다면 회심의 순간이 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 또한 회심한 이후에도 여전히 죄의 씨앗이 남아있기 때문에 여전히 죄성과 싸우며 갈등한다. 이런 갈등을 인지할 경우 자신이 참으로 회심했는지 확신이 들지 않을 수 있다.

한편, 하나님이 사람을 중생하게 할 때 죄로 오염된 영을 제거하고 새로운 영을 주시지 않는다. 오히려 부패한 영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새로운 영을 주신다. 마치 들판에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지만 주인은 가라지를 없애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그래서 중생한 사람은 두 가지의 성품이 동시에 공존한다. 이 성품이 거듭난 사람 안에서 싸운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자. “. . .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 . .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14-24) 그래서 자신에게 있는 옛 자아로 인해서 구원의 확신이 없을 수도 있다. 특히 옛 자아를 강하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중생에 관한 확신이 없을 것이다.

한편 누군가가 극적인 회심으로 인해 중생의 순간을 확신한다고 해서 정말로 그 순간이 중생의 순간이라고는 장담 못 한다. 예를 들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한 강도를 생각해 보자. 두 강도 모두 맨 처음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하다가 나중에 한 명은 마음을 고쳐먹고 예수님을 영접했다(마 27:44; 눅 23:39-41). 예수님은 이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다(눅 23:43). 그렇다면 이 강도는 언제 회심했는가? 겉보기에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 직전인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가? 답은 아무도 모른다. 이 강도의 인생과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이 강도의 인생에서 정말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알지 못한다.

심지어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가능하다. 이 강도는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불량배들과 어울리게 되고 자연스럽게 강도질을 배우게 된다. 강도질을 하며 살지만 자신의 처지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런데도 이 강도는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달리 배운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직업에 비해서 쉽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강도질을 하면서 쾌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싫을 때도 있다. 그는 남의 것을 강탈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는 비록 강도로 살지만 가끔 랍비들을 찾아가 성경을 배우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예수에 관한 소식을 듣는다. 많은 사람이 예수를 약속의 메시아로 믿고 따른다. 사람들은 예수가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유대인의 왕으로 유대인의 왕국을 다시 일으킬 것으로 믿는다. 예수는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고 탁월한 설교를 하며 병든 자를 고치고 기적을 행한다. 그가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예수에 대해 어떤 매력을 느끼고, 만나고 싶은 충동도 든다. 예수의 설교와 이적의 장면을 멀리서 듣고 본다. 예수가 자기를 이 현실에서 구원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강도질 외에 다른 일을 할 만한 자신이 없고 용기도 없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