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순서(회개 2)

166

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

회개가 죄로부터 돌이키는 포괄적 행위를 가리킨다면 고백은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회개의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개인적으로 고백해야 하며, 그 죄에 대한 용서를 간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해야 하고 하나님께 죄의 용서를 구해야 할까? 이 문제는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지 발견하면 된다. 죄의 용서는 본래 누가 할 수 있나? 오직 죄의 피해자만이 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강도를 만났다고 가정해 보자. 심하게 구타를 당해서 뼈가 여러 개 부러졌다. 재산도 다 빼앗겨서 빈털터리가 되었다. 병원에서 겨우 목숨만 부지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당신의 친구가 당신이 누워있는 병상에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고 가정하자. “내가 어제 당신을 이렇게 만든 강도를 만났다. 그래서 내가 그 강도를 용서했다.” 당신은 이때 어떻게 반응할까? “아니 네가 뭔데, 무슨 자격으로 나를 이렇게 만든 강도를 용서한단 말인가? 용서해도 내가 해야지…”라고 대답하지 않겠는가?

해바라기(Sunflower)라는 책이 있다. 사이먼 비젠탈(Simon Viessenthal) 이라는 유대인이 지은 책이다. 이 책은 이 사람이 나치 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소개한다. 어느 날 그는 노역에서 제외되고 뒤 계단을 통해서 캄캄한 병실로 불려간다. 그곳에는 하얀색 천으로 돌돌 감긴 어떤 물체가 침대에 놓여 있다. 그 물체는 심하게 다친 어느 독일군 병사였다. 그는 심하게 상처를 입어 얼굴을 포함한 온몸이 붕대에 감겨 있었다. 그 병사의 이름은 칼(Karl)이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 독일군 병사는 고백 한다. 그가 어떻게 나치군이 되었는지, 어떻게 러시아군과 싸웠는지, 그리고 어떻게 유대인들을 학살했는지 이야기한다. 수백명이나 되는 유대인을 나무집에 가둬 놓고 불로 태워 죽인 사건을 이야기하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런 학살행위에 가담했는지 이야기한다. 2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마친 칼은 이제 드디어 왜 비젠탈이 이 병실로 붙들려 왔는지 말한다. 그 병사는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아직도 유대인이 존재한다면 한 명을 자기의 병실로 불러들여서 그 사람을 통하여 죽기 전에 자기 양심의 가책을 씻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 병사는 비젠탈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 죄의식 때문에 무척 고통스럽소. 나는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당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이오. 그것이면 충분하오. 내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리한 부탁인지도 모르오. 그러나 당신의 대답 없이는 나는 평화로이 죽을 수 없소. 나를 용서해 주시오. 수많은 유대인을 죽인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오.” 병사는 어쩌면 유대인 수용소에서 조만간 죽게 될지도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에게 용서를 구한다. 비젠탈은 침묵 가운데 붕대에 감겨 죽어가는 그 병사의 얼굴을 보며 한참 앉아있었다. 그 후 그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서 병실을 나간다. 결국 그 병사는 용서받지 못하고 고통과 함께 남겨진다. 비젠탈이 용서를 하지 않았던 논리는 이러하다.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죄 때문에 피해를 본 자 뿐이다. 즉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가해자에 의해 피해를 본 피해자만이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독일 병사에 의해서 피해를 본 사람들은 지금 죽고 없다. 그러므로 나치에 대한 용서는 있을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사람의 말처럼 죄에 대한 용서는 오로지 죄에 대한 피해자만이 할 수 있다. 제삼자는 피해자의 죄를 용서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비젠탈의 행동은 옳았다. 그는 나치 병사가 저지른 죄에 대한 피해자가 아니기에 용서할 수 없다. 단 한 가지 미흡한 점이 있다면 죄에 대한 진짜 피해자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인간이 지은 모든 죄에 대한 궁극적 피해자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은 이점을 잘 깨달았다. 그래서 시편 51편 4절에서 그는 고백한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물론 다윗은 밧세바에게 죄를 지었다. 물론 우리아 에게도 범죄 했다. 죽은 아이에게도 죄를 범했다. 그런데도 다윗은 고백하기를 “내가 주께만 범죄하였다”고 한다. 그는 죄의 궁극적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았다. 그렇다. 왜 인간은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가? 바로 하나님이 죄의 궁극적 피해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