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순서(회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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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

죄는 하나님께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인간의 모든 죄에 대한 궁극적 피해자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에게 회개하고 용서를 구했으니까 다 끝난 것인가?

밀양이라는 영화가 있다. 전도연씨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이다. 어느 날 신애라는 주인공이 아들 준이를 데리고 밀양으로 간다. 그곳에서 아들 준이는 유괴를 당한다. 이어서 유괴범의 전화가 걸려오고 아들을 살리고 싶으면 돈을 달라고 한다. 돈을 주었지만, 아들은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다. 실의에 빠져 있는데 약국을 운영하는 교회 집사가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고 애써 권유한다. 주인공은 처음에 완강히 거부한다. 신의 세계, 영혼을 쉬게 하고 안식을 주는 영적인 세상을 부인한다. 그러나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약국 주인을 따라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기도회에 나가고, 거기서 오열한다. 가슴 밑에서 오는 한과 응어리를 쏟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다. 열심히 나간다. 노방 찬양 전도대회에서 활약도 한다. 그러는 동안 아들을 죽인 사람이 웅변학원 원장임을 안다. 신애는 아들을 죽인 원수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겠다고 고백한다. 교회 성도는 신애가 예수님의 사랑을 충만하게 이해해서 믿음의 깊이가 깊어졌다고 칭찬한다. 마침내 신애는 교도소에 가서 아들을 죽인 원수를 대면한다. 원수를 보자 사지가 떨린다. 떨리는 사지를 가다듬고 어렵고 힘들게 입을 연다. “주님의 사랑으로 당신을 용서하기 위해 왔다”는 정말 힘들고 어려운 고백을 한다.

그런데 여기에 이 영화의 반전이 있다. 정작 피해자의 용서를 받고 미안해하고, 죄송스러워하며, 후회하고, 고마워하며, 감사해야 할 범인, 할 수만 있으면 고개를 땅에 처박고 눈물로 사죄하고 감사해야 할 범인이, 너무나도 태평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자기는 하나님께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 말을 한다. 그러니까 신애의 용서는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주님은 사람을 죽인 자기를 찾아오셔서, 죄인 중의 죄인인 자기를 용서해 주셔서 요즘은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신애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분노하기 시작한다. 용서해야 할 당사자를 팽개치고 자신의 동의와 의사와 상관없이 신애의 원수를 용서해 버린 하나님에게 분노하기 시작한다. 가장 큰 피해자인 자기와 한마디 상의 없이 악한 범인에게 어떻게 천국을 약속할 수 있는지…그때부터 신애는 신을 부인하고 신에게 도전하는 행위를 시작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영화가 어떤 의도로 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영화는 성경이 가르치는 회개에 관해 잘못 전달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죄를 지었을 경우 죄의 궁극적 피해자인 하나님에게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지만 피해를 본 그 사람에게도 똑같이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함을 가르친다. 레위기 6:1-7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친 일이 발생할 경우를 말씀한다. 여기를 보면 가해자는 먼저 피해자에게 입힌 손해를 그대로 보상해 주어야 한다. 보상해 줄 때는 원금에다가 20%의 이자까지 합해서 보상해 주어야 한다. 그다음에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리라고 되어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5장 6항에서 가르친다. “자기의 형제나 그리스도의 교회에 죄를 지은 사람은, 사적으로 혹은 공적으로 자기의 죄를 기꺼이 고백하며 크게 뉘우치고, 손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자기의 회개한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공적으로 죄를 범했으면 공개적으로 죄를 고백하고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죄를 범했으면 개인적으로 죄를 고백하고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 그런 회개가 있을 경우에 회개한 사람과 다시 화목해야 하며, 사랑으로 그를 영접해 주라고 신앙고백서는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다시 들어가서 형제자매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라는 관문을 거쳐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