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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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논문심사위원)

구원받은 사람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개혁주의 신학은 그렇다고 가르친다. 구원의 확신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구원의 확신이란 성도의 마음에 있는 현재적이며 영원한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확신을 의미한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은 단지 죽어서 천당 가는 것 이상이다. 죄로부터 완전히 탈출하는 것이다. 죄로부터 완전히 탈출해서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상태를 구원이라고 한다. 그래서 구원은 현세적이면서 내세적이고 종말론적이다. 구원의 확신이란 이러한 구원에 대한 확신이다. “당신이 오늘 밤 죽는다면 천당 갈 자신이 있습니까?”라고 묻는 말은 구원의 확신에 대한 모든 질문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단지 가능성 또는 가망성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구원에 대한 완전한 확신 또는 확실성을 열망한다.

하지만 모든 기독교인이 구원의 확신에 대한 교리를 인정하지는 않는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아르미니안을 추구하는 개신교에서는 구원의 완전한 확신에 대한 가능성을 부인한다. 그들은 우리가 이생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무오한 확실성, 즉 우리가 구원받았으며 영생의 후사가 되었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개혁주의의 오대 교리 중에서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가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논리적으로 볼 때 당연히 구원의 완전한 확신도 부인해야 한다. 그러나 개혁주의에서는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완전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성경의 많은 구절이 구원의 완전한 확신을 이 세상에서 취득할 수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은 사람일까? 그렇지 않다. 구원파나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은 구원의 확신과 구원을 동일시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구원받았다는 보장은 없다. 많은 사람이 구원의 확신을 잘못된 근거에 두기 때문이다. 첫째로 율법주의자들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 없이 가난한 마음 없이 그들의 선한 행위와 선한 인격 위에 구원의 확신을 둔다. 둘째로는 형식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종교 생활을 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교회의 회원권이나 세례나 침례, 그리고 성찬과 같은 외적 형식이나 의식 그리고 예배 참석 같은 것에 확신을 둔다. 셋째는 신비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신뢰하고 이를 근거로 구원의 확신을 둔다. 이들은 주로 방언이나 꿈, 환상 등 어떤 특별한 하나님의 직통 계시를 믿음의 증거로 삼는다. 네 번째는 영지주의적 믿음에 구원의 확신을 두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자세는 주로 극단적 세대주의 신자나 구원파 신도에게서 발생하는데,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깨닫는 것, 즉 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구원의 확신을 둔다. 이런 자세는 하나님이 자신을 선택하기로 예정했다는 것을 믿는 믿음에 구원을 두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구원과 구원의 확신을 동일하게 본다.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그 확신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했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상에서 언급된 자세는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다. 이들은 잘못된 근거에 구원의 확신을 둔다. 따라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