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를 아시는 분 앞에서의 자유함

192

서상규 목사/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담임

 

한국사람들은 남의 시선에 매우 민감합니다. 그래서 일상적인 옷차림에서부터 행동까지 일일이 ‘다른 이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를 고민합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체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체면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떳떳할 만한 입장이나 처지’를 의미하는데 한국사람들은 이것을 내면이 아니라 외면에서 만들어 내려고 합니다. 이를 다른 말로 ‘겉치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 헤엄은 안 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차라리 물에 빠져 죽을 지언 정 양반의 체면을 지키려는 한국인의 정서를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면 체면은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대가로 마음의 자유로움은 포기해야 합니다. 내 속은 그렇지 않은데 겉은 뭔가에 걸맞게 살아야 하는 삶의 무거움이 우리들의 인생을 힘들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도 그렇게 합니다. “목사가, 장로가, 집사가, 그리스도인이 라면서…” 내면은 변화되지 못했는데 겉은 그런 모습으로 살아야 하니 신앙이 기쁘지가 않고 즐겁지가 않습니다. 신앙의 체면과 겉치레가 너무 무겁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행하매 다윗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14]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삼하 6:13-15) 이 장면은 블레셋에 빼앗겼던 법궤를 다시 다윗성으로 운반해 오는데 이를 본 다윗이 얼마나 좋았던지 왕의 옷을 벗고 덩실 덩실 춤을 추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다윗의 아내 미갈은 다음과 같이 비웃습니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가로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삼하 6:20) 미갈은 다윗을 향하여 ‘방탕한 자’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당신의 모습이 천하고 가난한자 처럼 보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미갈의 말에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삼하 6:21)라고 대답합니다. ‘부끄럽고 창피하다. 왕이 체면도 없이 어찌 천한 것 들처럼 춤을 추는가?’ 라는 미갈의 질책에 난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요. 여호와 앞에서 나는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대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다윗은 체면과 체신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앞에서 부끄러울 것 없는 한 인간으로서 자유하였습니다.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그 이유를 다윗의 시편 139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시 139:1-3) 인간은 참 모순으로 가득 찬 존재입니다. 내 속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을 좋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 속을 다 드러내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남들이 날 이해하지 못해 속상하다고 합니다. 가족들도 내 마음을 몰라주니 불행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 내 문제와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다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 한 분 하나님을 발견하고 놀라워합니다. 시편 139편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감찰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첫번째 등장하는 ‘감찰’의 의미는 물줄기나 금속을 찾기 위하여 땅을 파거나 뚫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두번째 ‘감찰’의 의미는 ‘흩어 버리다’의 의미로 알곡을 고르기 위하여 쭉정이를 바람에 쏘인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구멍을 뚫고 바람으로 까불려 그의 마음 속 모든 것을 보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감찰 하신다는 말은 우리를 조사하고 추적하고 뒤를 캔다는 그런 부정적인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지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숨길 것이 무엇이고 감출 것이 무엇이고 거짓을 할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속속들이 나의 면면을 아십니다. 나의 과거를 아시고 나의 현재를 아십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시는 분 앞에서 체면이나 겉치레를 찾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진실되지 못하게 겹겹이 포장된 겉치레의 신앙을 벗어 버릴 때 우리의 영혼은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왕의 체면도 벗어 버리고 덩실 덩실 춤을 출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