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의 아버지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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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관(시카고노인건강센터 사무장)

 

1946년 7월부터 서울 형무소 刑牧으로 일하기 시작하신 아버지는 그의 진솔함과 근면함 때문에 형무소 안에 있는 재소자나 밖에 있는 일반인이나,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는 목사님이셨다.  설교는 C+, 웅변엔 D- 평가를 한다면 尋訪(심방)과 對話엔 A+다. 1:1의 상황에서는 늘(어머님만 빼놓고) 감화 감동을 주시는 힘이 있으시다.

당시 敎化課에는 이북에서 월남한 두 목사님(박상건. 임춘성)이 계셨는데 法務部 刑政課의 減員지시에 따라 목사님 한분이 물러나야 될 입장이었다. 어느 날 아침, 형무소 소장이 목사님 세분을 자기 사무실로 소치하더니 “위에서 감원지시가 내려와 형무소 직원을 대폭 감원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들은 모두 인격자들이시니까 어느 한 분이 자진해서 사표를 내 주시면 좋겠습니다.” 목사님 세분이 모두 조용해졌다. 대답이 없어, 소장은 교화과 직원에게 투표를 지시했다. 투표결과 만장일치 하태수 목사님의 유임이었다. 목사님 한 분이 “하 목사님은 아는 교회도 많으시지만, 우리는 피난 목사로 아는 이도 없고…… 솔직히 말해서 밥은 먹고 살아야하고 고민이 많습니다. 우리를 살리는 셈 치시고 하 목사님이 사임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읍소했다. 사실 하 목사님은 선후배 친구도 있고 장로회총회에도 등록이 된 개척교회목사이시니 피난 목사님들보다는 여건이 좋았다. 그러나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심각한 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하 목사님은 손수 사표를 써서 소장에게 건넸다. 소장은 “하 목사님은 정말 목사님이십니다. 존경합니다. 노회의 도움을 받아 재소자 구령사업을 하신다면 男女監 구분 없이 언제나 출입하실 수 있도록 지시해 놓겠습니다.” 일어서서 정중히 말했다. 어머니에게서 받을 핵폭탄 생각은 하셨는지?!*?^ 궁금했다.

핵폭탄이 터질 저녁이었다. 원래 돈벌이 재주가 없는 분이 매월 들어오는 생활비 생각은 안하시고 덜컥 사표를 내고 오셨으니 어머니로서는 앞이 캄캄하신지 땀을 흘리셨다.

어머니는 결혼 이후 한 번도 걱정 없이 살아 본적이 없다느니…. 고생은 혼자 맡아 한다느니…. 서방 잘못만나 이 꼴이라느니…. 네가 남편, 애비 맞느냐? 느니… 상여 집에 온 듯…. 통곡했다 방바닥을 쳤다…. 정상이 아니셨다.  아니 그 상항에선 정상이었다고 해야 한다.

아버지 고유의 침묵! 꼭 짚어서 얘기할 수 없지만 내 깊은 가슴엔 “그 것은  ‘기도’라고 느껴진다. 삶의 면면이 喜怒哀樂으로 점철되어있어 표현되는 것이 정상인데 비하여 아버지는 이를 초월해서 ‘無我’의 지경으로 몰입하신다. 그래서 어머니의 핵폭탄이 有效하지 못하다. 그래서 어머니는 더 激하신다. 아버지는 교인 심방이나 전도에 나가시면 자상하게 말씀을 잘 하시는 style이신데 비하여 어머니하고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를 二重이라할까 自力救濟라고 할까……. 아주 신비스러울 때가 많다. 아니면 ‘anger management’에 소질이 많으신 것일까. 어머니의 속사포 같은 원망과 한탄에도 개의치 않으시고 읽으시던 성경위에 두 손을 얹으시곤 먼 밖을 내다보시는 모습은 해탈(?)을 영상케 하셨다.

아버지의 사표사건 이후 어머니는 쌀과 식료품을 외상으로 사야만 했다. 자존심이 강한 어머니로서는 이 또한 stress였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미움은 세월이 흘러도 그리 쉽게 살아지지 않았다. 목사의 딸, 목사의 부인 그리고 아이들의 어머니라는 이유만 아니었더라면 어머니는 벌서 도망가셨던지(당시 별거, 이혼은 생각도 못할 때) 아니면 자살(?)하셨을 것 같다. 교회가 목사의 생활을 보장 해준다 해도 사모와 교인들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一人四役을 잘 감당해 내야하는 어머니로서는 ‘죽고 싶다!’고 말씀 할만 하셨다. 어머니가 행복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 여인의 가여운 생을 현장에서 보고 느끼면서 우울해지기도 했고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