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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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횃불트리니티 총장 어시스턴트/횃불재단 DMIN 스태프)

노아는 인간의 죄악이 절정에 달했던 어두운 시절을 살았다. 하지만 그는 당시에 의인이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  .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 6:8-9).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했다. 정말로 노아는  완벽한 인간으로 죄가 전혀 없었던 사람일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0-12). 이 범주에서 노아는 제외된 걸까? 그렇지 않다. 아담이래 모든 사람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 영혼이 부패하고 마음이 부패해서 죽은 시체와 같다. 이런 시체와 같은 사람 중에서 하나님은 특정한 사람을 선택한다. 그 선택의 기준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발견된다. 하나님의 지혜로 특별한 사람들을 선택해서 성령으로 거듭나게 한다. 그리고 믿음도 주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래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다 (엡 2:8)

노아가 의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기에 성령으로 거듭났다. 거듭난 그의 인격 속에도 아직까지 죄의 불순물이 남아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이를 가리켜 회개와 믿음이라고 한다. 이런 이유로 그는 당대에 완전한 자요 의로운 자라고 칭함을 받았다. 그가 존재론적이나 도덕론적으로 거룩함에 도달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완전한 자라로 칭함을 받은 이유는 거듭나서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완전함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거룩한 것 처럼 거룩해 지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그러나 완벽한 거룩성은 이 세상에서 완성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의로움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자신의 죄성과 싸우며 사는 것을 기대한다. 노아가 이런 사람이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 그래서 의롭게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또한 노아는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을 청소하려고 하셨다. 죄악이 너무 커서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만든 것을 “한탄”하셨다 (창 6:7). “한탄”했다는 표현은 신학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을 논할 때 하나님은 가장 거룩하시고, 가장 완전하시며, 가장 사랑이 많으시고, 변함이 없으신 분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이 한 일을 한탄했다고 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한탄했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마음을 인간의 감정을 빌어서 표현한 것이다. 일종의 의인화다. 의인화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잘 설명하기 위해서다. 어쨌던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할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악했던지 심지어 동물을 만든 것조차 후회할 정도였다. 그래서 물로 심판하기로 했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모든 것들을 물로 청소하기로 했다. 이 대대적 심판에서 오직 노아 및 그의 가족만 제외된다. 그들이 구원받는 방법은 방주를 통해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인데, 방주 없이도 이들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지 않은가?. 간단히 말해서 세상을 심판하는 동안 노아와 그의 가족을 공중에 띄워놓고 하늘에서 맛있는 음식을 보내 주실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인간의 수고를 요구하신다. 구원이 그렇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지만 인간을 통하여 이룬다. 하지만 여전히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노아가 만들었던 방주의 크기를 보자.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다 (창 6:15). 규빗이란 팔꿈치에서 중지까지의 길이로 보통 45센티미터다. 따라서 방주 길이는 대략 135미터, 너비는 23미터, 높이는 14미터다. 사실 각종 짐승을 일곱 쌍씩, 또는 두 쌍씩 싣기에 그렇게 큰 배는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초월적 간섭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방주가 완성되기까지 120년이 걸렸다. 얼마나 지루한 시간이었을까? 도와주는 사람 없이 노아와 그의 세 아들만으로 배를 만드는 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들다. 주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조롱하고 모욕하며 방해했겠는가? 너 혼자 잘났느냐고 그의 이웃은 얼마나 심하게 간섭했겠는가?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다. 세상의 모든 논리가 “아니다”고 할 때 그는 “예”하며 갔다. 외로운 믿음의 길을 걸었다. 믿음은 이렇게 순종을 요구한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지 않았다면 그도 역시 홍수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사실로 인정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항상 같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