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눈 눈 흰눈에 묻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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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시카고)

몇 십년 만에 시카고 지역에 한파와 함께 눈이 격일이라 할 정도로 내리다. 영하 28도까지 온도가 내려가고 한 자 이상 눈이 내려 집 드라이브 웨이를 치우기가 바쁘다. 북극 곰이면 살 맛이 나겠지만 나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70년대 뉴욕 올바니에 있을 때 버팔로까지 스노우 벨트라 정말 산더미처럼 눈이 쌓이는 것을 겪었다. 버팔로 지역 고속 도로를 달리던 차량이 눈으로 길이 막히고 앞은 보이지 않고 개스는 떨어지고 밤이 되어 길에서 죽음을 당한 자가 많았다.

눈으로 겪는 피해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눈이 많이 오면 다음 해는 풍년이라고 모두 좋아 하던 기억이 난다. 또 눈은 희고 아름다움을 준다. 세상 모든 좋고 나쁜 것, 아름답고 추한 것을 덮어 순결하게 보이게 한다. 온 세상이 꼭 같이 깨끗하고 아름답다. 흰 눈은 우리가 백의민족임을 생각하게 한다. 빨래가 어려운 때에도 흰 옷을 입고 정결함을 보였다. 자랑스런 일이다. 뉴질랜드를 방문하여 피지 등 남태평양에서 온 이민 교회의 설교 초청을 받고 방문한 때 모든 사람이 흰 옷을 입고 있어 매우 놀랐다. 우리만 백의민족이 아닌 것을 알게 되다. 에티오피아 정교회 교인들은 교회에 갈 때 흰 옷을 입고 사우디 같은 회교 나라에도 흰 옷을 입는다. 흰 옷은 정결한 삶을 원하는 많은 종교와 민족이 선택하고 있다.

눈이 덮여 있을 때는 아름답지만 눈을 치우거나 눈이 녹아 내리면 그 아래는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달라진 것이 없다. 흰 옷을 입는 것이 그러하다. 흰 옷을 입는다고 그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속에 있는 사람은 그 옷을 입기 전과 다름이 없다. 한국, 남태평양, 에티오피아,  사우디, 어디 누구나 모두 같다.

외모가 아니라 속 사람이 새로워지고 순결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흰 옷이 있다. 천국의 성도들이 입는 옷이다. 천국에서는 각 나라 족속 백성 방언에서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를 찬양한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고 한다. 모든 더러움과 죄를 깨끗이 씻음 받은 흰 옷이다. 죄는 가책과 두려움을 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맥베스는 왕이 되고 싶은 탐욕에 왕 덩컨을 죽이고 왕이 되나 죄책에 시달리며 그 손에 묻은 피를 무엇으로 씻어낼 수 있나, 태평양 물인들 씻어내랴며 몸부림한다. 죄는 그 댓가로 형벌을 받으면 처리되고 더 이상 두려움이 없어진다. 최후 재판관 하나님이 판정하신다.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라고 약속한 하나님은 죄지은 인간을 사랑하기에 자기 아들로 대신 형벌 받고 피흘려 죽게 하였다. 그 아들을 믿고 받아드리는 자에게는 죄씻음 받은 것을 확인하는 흰옷을 주어 입게 한다. 더 이상 형벌의 두려움이 없다. 사람이 새롭게 된 아름다운 이런 세상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