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다윗의 후손 그리스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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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횃불트리니티 총장 어시스턴트/횃불재단 DMIN 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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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다윗의 뿌리이자 다윗의 후손으로 왕이 되어서 인간에게 어떤 유익이 있단 말인가? 그가 왜 태어나셨는가? 왕이 왜 필요한가? 누구를 위한 왕인가? 백성을 통치하고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왕인가? 그런 왕은 얼마든지 있다. 세상천지에 널리고 널린 왕이 그런 왕이다. 그렇다면 왕이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21). 왕이 오신 목적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특별히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신다고 했는데, 자기 백성과 저희들이 누구인가? 물론 넓게는 예수 믿어 구원받는 모든 백성을 가리키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마태복음 1장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혈통적 조상들이다. 그들 모두는 죄인이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영광을 제대로 비취지를 못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바로 이들의 죗값, 그의 조상들의 죗값을 치르기 위함이며,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죄인이었다. 자기의 아내를 두 번이나 누이라고 거짓말 해서 위험에 빠뜨렸다. 하나님의 약속을 제대로 믿지 못하여 하갈을 통하여 후사를 이으려고 했다. 그의 아들 이삭도 아버지를 본받아 자기 아내를 누이라 거짓말하여 위험에 빠뜨렸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에게 사기를 쳤던 사람이다. 유다도 마찬가지다. 아니 훨씬 더 중한 죄를 지었다. 마태복음 1:3은 유다가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라고 하지 않고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고 한다. 왜 그런가? 왜 여인의 이름인 다말이 그것도 이방 여인인 다말이 이 거룩한 족보에 나타나는가? 왜냐하면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레스와 세라는 유다와 다말이 근친상간으로 낳은 불륜의 열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저자 마태는 단순히 유다가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고 하면 될 일을 다말이라는 여인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넣어, 마태복음을 읽는 독자에게 유다와 다말 사이의 죄를 알린다. 저자의 이런 노력은 몇 번 더 반복한다. 마태복음 1:5은 살몬이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았다고 한다. 살몬이 보아스를 낳았다고 하지 않고 라합에게서 낳았다고 하며 라합을 부각한다. 왜 그런가? 라합이 누구인가? 라합은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멸망할 당시에 살았던 이방 기생, 즉 창녀였다. 이 여인은 이스라엘 정탐꾼을 구했고, 나중에 그 정탐꾼 중에 한 명인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다. 라합이라는 여인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언급한 이유는 라합의 신분이 창녀였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마태복음 1:5에서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고 했는데, 마찬가지 이유다. 비록 룻은 정결한 여인이기는 하지만, 모압 여인이었다. 모압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딸이 사통하여 낳은 족속이다. 따라서 신명기 23:3절은 모압 족속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밝힌다. 마태복음 1:6은 다윗이 솔로몬을 낳았다고 하지 않고,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고 한다. 이 사건은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있었던 간통 사건을 비롯하여 밧세바의 전남편 우리야의 억울한 죽음까지도 생각나게 하는 구절이다. 이렇게 6절까지 총 4명의 여인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예수님 조상들의 죄가 의도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예수님 조상들의 죄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 그는 비록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은 자였지만, 나중에는 자기 힘을 의지하고, 정치적인 힘을 의지하여 우상숭배를 했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부터 9절의 아하스 왕까지 모두 우상 숭배의 죄에서 자유로웠던 사람은 없었다. 그중에는 아사와 웃시야 왕같이 좋은 왕도 가끔 나왔지만, 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마태복음 1:10에서 히스기야 왕이 등장한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요 하나님과 가까이했던 왕이었지만, 인생 말년에 교만 죄를 지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므나세는 유다 역사상 가장 사악한 왕이었다. 비록 나중에 회개했지만, 자기 친아들을 불에 태워 이방 신에게 바쳤던 장본인이다. 그 이후의 왕들도 마찬가지로 우상숭배, 착취, 살인 등 사악한 죄를 지었다. 예수님은 바로 이들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 마태복음 1:21 말씀처럼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 바로 이것이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