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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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스데반은 자기와 출신이 같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하고 맙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유대교의 극렬한 박해가 시작되고, 이를 견디지 못한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빠져나가 로마 전역으로 흩어집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렇게 흩어진 성도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전혀 상식적이지 않아서 놀라운 겁니다. 이들은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모습을 눈으로 보았거나 귀로 들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함께 신앙 생활하던 형제 자매들이 잡혀 감옥에 갇히고 고통을 겪는 걸 본 사람들입니다. 이 어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예루살렘을 빠져나간 겁니다. 그렇다고 도망쳐 정착한 곳이 안전하냐면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 바울이 공회의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쳐들어가던 것 기억나시죠. 예루살렘에서 150마일이나 떨어진 다메섹에 가서 정착한 성도들과 그들이 세운 교회를 핍박하려고 간 겁니다. 이처럼 공회가 보낸 유대교인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인 겁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고 난 후 바울이 선교하던 중 진노한 유대교인들에 의해 죽을 뻔합니다. 이처럼 정착한 지역의 유대교인들에게 핍박을 당할 수도 있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선 예수 믿는 걸 포기하거나, 표나지않게 조용히 신앙 생활하는 것이 상책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흩어져간 성도들은 이런 현실을 두려워하지도 또한 침묵하지도 않았습니다. 당당하게 복음을 전한 겁니다. 도대체 이런 이상하고도 놀라운 현상은 왜 일어난 걸까요? 

신학교에 갔을 때 교수님들이 추천해준 도서 목록에 John Foxe가 쓴 “The Book of Martyrs” (기독교 순교사화)가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부터 16세기까지 일어난 순교의 사례들을 찾아내 정리해놓은 책입니다. 400페이지가 약간 넘는 이 책은 제목처럼 성도들의 죽음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누군가의 폭력 때문에 당한 죽음을 대하면 일반적으로 슬픔, 두려움, 안타까움, 분노 등의 감정을 갖게 됩니다. 순교도 누군가의 폭력에 의해서 발생한 죽음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종류의 죽음으로 가득한 Foxe의 책은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력, 즉 영적 도전을 줍니다. 저도 Foxe가 조성해놓은 이 죽음의 숲을 지나는 동안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 소중한 복음을 생명을 걸고라도 지키고 전해야겠다’고 결단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왜 우리는 순교자의 죽음에서 영적 도전을 받게 되는 걸까요?

여러가지 답이 있을 수 있지만 그중 한가지만 선택해보려고 합니다. 죽음과 핍박 앞에서도 그들이 보여준 흔들리지 않는 신앙, 즉 구원에 대한 확신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는 순간에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천사같은 얼굴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모습을 보고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죽는 순간 자신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을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믿음으로 증거한 겁니다. Foxe의 책에 등장하는 순교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는 맹수들에게 물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순교 직전 그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불이든 십자가든 맹수든, 뼈를 부수는 것이든, 육신을 찢는 것이든, 온 몸을 갈아버리는 것이든, 그 어떤 환난이든 내게 오라고 하십시요. 그 환란을 통해 난 예수님께 나아갈 것입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순교 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을 확신한 겁니다. 스데반과 순교자들의 이 견고한 신앙, 즉 구원에 대한 확신이 시대를 넘어 다른 모든 신앙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겁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구원과 구원에 따른 하나님의 약속들이 분명한 진리임을 자신의 생명을 걸고 증거할 수 있는 참신앙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 흔들림 없는 신앙을 통해 함께 천국길 동행하는 성도들에게 힘과 도전을 주는 참제자의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