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중물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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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선한 이웃 교회 담임/미육군 군목

 

“남자들이 교회에 가지 않는 이유가 있다”는 기사를 쓴 내셔널 리뷰의 편집자인 니콜라스 프랭코비치는 NFL(National Football League)이야말로 어떤 종교조직보다도 그 숫자나 충성도에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많은 이들은 수퍼볼이 열리는 일요일엔 당연히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기 보다는 집에 모여 풋볼을 관람할 것이라 말하며, “일요일은 풋볼의 날”(Sunday Is for Football)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가지고 산다고 합니다. 미국 성인 남성의 34%가 그리고 여성의 18%가 대략 6시간 이상을 일주일에 풋볼을 시청하는 데 시간을 소비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어떤 종교 조직보다 가장 확실한 충성된 그룹을 가진 조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세상엔 저마다 자신의 관심과 취미에 따라 그 곳에 절대적인 충성과 정렬을 쏟아붓는 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꼭 지켜야하고 간직해야할 인생의 가장 귀한 공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영혼의 지성소를 풍요롭게하는 삶의 “거룩한 공간”(Sacred Space)을 간직하는 지혜입니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리고 인생에서 어떤 것에도 빼앗길 수없는 가장 소중한 영역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공간”이란, 나의 삶의 목적을 생각하며 매일 매일 걸어가는 삶의 방향을 얼라인먼트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신과 양심과 마주하는 시간이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기꺼이 바쁜 삶의 걸음을 잠시 멈추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모든 힘겹고 치열했던 하루를 마치며 고요히 침상에서 기도하는 시간이며, 모든 가족들을 잠재우고 뒷뜰에 나가 소원을 빌던 우리 어머니들이 가졌던 신성한 시간입니다. 이것은 영혼의 생수를 긷는 시간이며, 내 안에 있는 모든 혼돈과 공허함에 질서와 충만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헛된이 의지하는 것들과 인생의 수많은 부질없는 것들을 걸러내고 내려놓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삶을 살아가며 이 “거룩한 공간”을 잃어 버릴 때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이 엉뚱한 곳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삶의 자세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선입관과 경험과 감정까지도 겸허히 내려놓는 믿음을 필요로 합니다. 인생의 모든 것들을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과 내가 느끼는 감정만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허황됨을 정직히 볼줄하는 양심의 용기를 필요로합니다.

 

성경에 소개된 예수님을 배척한 동네 사람들은 아마도 이같은 겸허한 눈이 없었던 사람들 같습니다. (누가 4:21-30) 예수님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사람들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품었던 선입관과 믿음의 신념 그리고 자신들의 상한 감정에 이끌려 예수님을 동네밖 벼랑끝으로 끌고가 그를 떠밀어 죽이려 했습니다. 이같이 살기 가득한 이들에게 주님은 두명의 인물을 소개합니다. 이방인이었던 시돈의 사렙다 과부와 아람의 나아만 장군였습니다. 이스라엘에 그렇게 많은 가난한 과부들이 있었고, 질병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문둥병자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던 이들은 오직 이 두명뿐이었다고 소개합니다. 죽을만치 가난하여 이젠 한 줌의 밀가루와 한 방울의 남은 기름으로 빵을 구워 자신의 아들과 함께할 마지막 음식을 준비하던 기가막힌 처지의 과부였지만 그녀는 놀랍게도 다급한 자신의 처지를 뒤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감동앞에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였습니다. 시리아의 나아만 장군은 제국의 장군이란 체면과 권위의 계급장을 내려놓고 요단강물에 어린 아이처럼 일곱번 몸을 담그며, 자신안에 있는 모든 교만함을 잠재우고 주님앞에 순종하였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다급한 필요와 감정을 내려놓고 자신들의 영혼의 귀를 귀울여 하나님의 뜻을 경청하는 “거룩한 공간”을 준비한 사람들였습니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마중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지하수의 물을 끌어 올리기위해 펌푸에 부어넣을 한 바가지의 물을 말합니다. 펌프질하여 얻은 시원한 물로 등목도 하고, 목을 축이기도 하고,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맘껏 물싸움도 하지만, 꼭 명심해야할 일은 “마중물”을 한켠에 따로 구별하여 남겨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다시 샘물을 퍼내어 지하수의 물을 길을 방법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마중물”을 따로 떼어놓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내 영혼의 지성소에 주님을 위해 겸허히 비워드리는 따로 구별한 “거룩한 공간”입니다. 그리하여 일상의 분주한 일들과 치열한 삶의 경쟁들로 황패해진 영혼의 지성소를 가꾸는 은혜를 누리길 바랍니다. 영혼의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거룩한 공간”를 구별하여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