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지개에 담긴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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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환 목사(시카고기쁨의교회 담임)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에 대한 전도는 늘 ‘성경이 사실이냐 허구냐’라는 논쟁으로 빠져들었다. 성경이 다 사실이라고 ‘증명’하고 싶었던 내 논리는 과학적 근거를 들이대는 친구들의 논리 앞에 좌절을 경험해야 했다. 그러다 알게 된 창조과학은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그것도 유명 대학 교수라는 분들이!) 창조가 과학적으로도 사실이라는 근거들을 제시해 주었다. 대홍수 사건을 증명하는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었고 그랜드캐년도 그 증거 중의 하나라는 이야기, 대홍수 때 궁창 위의 물이 다 쏟아지면서 태양의 자외선 과다 노출로 인간 수명이 크게 줄었다는 이야기, 여호수아서에 태양이 하루 동안 멈춘 이야기가 실제로 NASA에서 지구의 시간을 컴퓨터로 조사하던 중 24시간이 빈 것을 발견하면서 사실로 증명되었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매력적으로 들렸던지(물론 NASA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거듭되는 논쟁에서 깨달은 것은, 성경과 창조 기사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증명한다고 해서 – 그게 가능하지도 않지만 – 그들이 예수 믿는 건 아니더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성경을 과학의 이름으로 증명하려고 애쓰는 동안, 그 성경이 우리에게 정말 말하려고 하는 본질적인 메시지는 놓쳐 버린다는데 있었다.

대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며 언약의 증표로 무지개를 보이셨다. 이 무지개가 세상에 등장한 첫 번째 무지개였을까? 누군가는 대홍수 이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따라서 노아가 본 무지개가 첫 무지개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이 왜 사실인지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애쓴다. 그래, 좋다. 설령 그렇다 한들, 그것이 홍수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성경의 메시지와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가.

문자 너머를 읽지 못하면 홍수 이야기는 과학 논쟁에 그치고 만다. 혹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휩쓸어 버리는 무자비한 신의 분노에 관한 신화가 된다. 성경묵상은 문자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에 가 닿으려는 시도다. 과거 고생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교인의 말을 듣다 보면, 그 목소리의 떨림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다. ‘아, 이 분이 실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구나.’ 말 너머의 말을 듣는 것이다. 홍수 사건에 담긴 하나님의 속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성경은 온 땅이 ‘부패’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셨다고 기록한다. 여기서 ‘부패하다’라는 단어와 ‘멸망시키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같은 단어(솨하트)다. 부패라는 말 속에 이미 멸망이 담겨있다. 하나님이 멸망시키기 전에 이미 세상은 스스로를 멸망시키고 있었다. 지금도 인간들의 탐욕은 이 세상을 환경오염과 전쟁으로 멸망시켜 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대홍수 이야기는 무자비한 심판 이야기가 아니라, 멸망의 끝자락에서 노아라는 아슬아슬한 희망을 건져내는 이야기인 것이다.

성경의 무지개(rainbow)는 본래 ‘활’이라는 뜻의 단어다. 하나님이 활을 구름 뒤 하늘에 거셨다. 다시는 세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지 않겠다는 그분의 다짐의 징표다. 이홍섭 시인은 <무지개>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서산 너머에서 밤새 운 자 누구인가/ 아침 일찍 무지개가 떴네.” 무지개가 누군가의 눈물로 인해 생겼단다. 그러고 보니, 대홍수는 하나님의 눈물 아니었을까? 타락한 세상을 보시며 온 땅이 다 잠기도록 펑펑 쏟으신 그분의 40일 간의 눈물. 그분의 눈물 덕분에 우리는 무지개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