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화와 소통 17: 소통과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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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목사(다솜교회 담임)

제가 목회하는 교회는 여름이면 약 두 달 동안 교회의 특별한 사역을 놓고 긴 토의의 과정을 거칩니다. 지난 해에는 자녀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세대간 통합예배를 위한 토의를 두 달 간에 걸쳐서 했고, 올해는 소그룹의 재조직을 위해서 긴 토의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이유는 가능한 모든 교인들의 의사를 충분히 들어보고 변화의 방향을 결정하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필자의 교회에 중요한 이유는 필자가 목회하는 교회는 소 권력 차이의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 권력차이 문화란 한 나라 또는 한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들 사이에 큰 권력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권력은 옮겨갈 수 있고, 누구나 권력에 접근할 수 있으며, 권력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어쩔 수 없이 편의상 존재하는 역할상의 차이라고 이해됩니다. 권력의 유무와 상관이 없이 사람들은 상호간을 대할 때 차별이 없이 똑같이 대합니다.

소 권력차이 문화와 대조되는 문화를 대 권력차이 문화라고 부릅니다. 대 권력차이 문화 안에서는 권력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의 구성요소로 인식됩니다. 사람들은 본래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은 차별적인 대우를 받습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수직적인 배열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위계질서와 상명하복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대 권력차이 문화에서는 지위와 계급이 중요하고, 의사결정과정에서 권력이 없는 사람들의 의견은 종종 무시되곤 합니다.

권력의 차이에 대한 서로 다른 문화적인 이해는 소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대 권력차이의 문화권에서는 소통이 늘 권력자 중심으로 일어납니다. 학교에서는 교사가 중심이 되어 모든 소통을 주도합니다. 교회에서는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성직자가 소통을 이끌어 갑니다. 정부부처에서는 그 부처의 가장 높은 사람의 뜻에 따라 모든 소통이 이루어지고 높은 사람의 뜻이 곧 정책이 됩니다. 의사 결정은 보통 권력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의 몫입니다. 권력이 없는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주로 권력자들의 말을 듣고 그대로 따르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많은 경우 무의적인 복종이 강요됩니다.

소 권력차이 문화에서는 정반대의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의사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며,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이끌어 가는 소통은 환영 받지 못합니다. 권력이 없는 자들도 소통의 과정에 참여하게 되고, 의사결정권을 공유합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대 권력차이 문화권에 속해 있었으며 여전히 이 문화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가 살아가는 미국은 전형적인 소 권력차이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한국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일수록 리더가 알아서 결정하고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반면, 미국 문화권에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더 많은 대화와 의견 교환을 요청하고, 어떤 결정이든 자신들의 의사가 반영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좀 더 효과적인 소통을 원한다면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의 권력에 대한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대 권력차이 문화권의 사람이라면 좀 더 대화를 주도하고 이끌어 가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며, 소 권력차이 문화권의 사람들이라면 좀 더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결정을 내려가는 태도로 대화를 하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권력의 차이에 대한 사람들의 문화를 잘 이해한다면 소통의 레벨이 한 단계 상승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