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화와 소통 7: 소통과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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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목사(다솜교회 담임)

소통에 있어서 침묵의 역할은 문화에 따라서 매우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한국 사회에서 전통문화의 영향을 받아온 사람들은 “침묵은 금”이라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말이 많은 것보다, 말을 줄이는 것이 실수를 줄이는 길이며, 말이 많으면 허물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은 성경에도 있는 내용이어서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은 말을 다스리는 능력을 매우 높게 평가합니다. 비록 자신은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사람이라도, 침묵의 고귀함에는 별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서구사회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서구 사회는 전통적으로 말과 수사학을 찬양하는 경향을 보여 왔습니다. 그들은 침묵을 매우 어색하고 곤란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침묵은 관심의 부족, 소통을 싫어함, 적개심의 표시, 거절, 불안함과 수줍음, 언어적 기술의 부족 등의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어 집니다.

즉 서구사회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침묵의 가치보다는 말하는 것의 가치, 잘 설명하는 일의 가치,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하는 일의 가치를 훨씬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말의 실수가 있을지라도 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어느 선교 세미나에서 기도에 관해서 강의를 하다가, 부부간 문제에 대하여 침묵하면서 하나님께 기도에 집중해야 함을 설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세미나에 참석하셨던 가정 상담을 전공하신 분께서, ‘그런 경우에는 침묵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속에 있는 내용을 좋은 말로 잘 털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반론을 제기하셨던 경험이 있습니다. 물론 서구문화에 영향을 받은 상담학을 공부하신 분의 의견이었습니다.

문화적으로 보면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문화적 지향성이 현저할수록 집단적이고 상호의존적인 문화적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보다 침묵의 가치보다는 말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말을 많이 해서 오해를 불러오는 경우보다는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함으로 불러오는 오해가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디아스포라들은 침묵에 관한 서로 다른 의견들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사회를 이루고 살아갑니다. 많은 1세대 이민자들이 소통의 부족에 대한 불평을 그들의 자녀들에게 그리고 주변의 젊은 사람들에게 듣게 됩니다. 어떤 때는 그런 불평이 이해가 되지 않고, 부당하다고 느낄 때도 많습니다. 시시콜콜 말로 다 해야 되는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여전히 침묵이 금이고, 웅변은 은이라는 생각에 한 마디 더 하고 싶은 것을 참아내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미국에서, 우리 보다 더 젊은 세대들과 잘 소통하고 싶다면 지금보다 좀더 침묵을 깨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좀 더 편안하게, 그리고 거짓이 없이 대화할 수 있는 기회들을 자꾸 만들어야만 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그렇게 방정 맞게 떠들어 대는 것 같아도 그가 미국의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계속하고, 또 여전히 그를 따르는 지지자들이 있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사회는 남아일언 중천금이나 침묵하는 것 보다는 말하고, 자신의 의견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일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보다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서 독자들의 침묵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새로와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