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믿음을 보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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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신약성경 마가복음 25장에 나오는 여자는 혈루증이라는 병을 12년 동안 앓고 있었습니다. 이 병이 현대 의학용어로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원인을 규명할 수 없는 하혈이 계속되는 고약한 병이라고 합니다. 당시 여자에게는 문둥병 다음으로 저주스러운 병이었습니다. 레위기 15장에 보면 이런 여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소상히 밝히고 있는데 한마디로 부정한 자로 낙인을 찍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사회에서 도외시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되게 됩니다. 게다가 예수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율법 외에 다른 조항들이 더 하여졌기 때문에 이 여자가 당하는 어려움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실로 그는 죄책감과 수치감과 고독으로 찌든 나날을 보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 여자가 예수를 찾아왔을 때에 그의 병은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있었고 재산은 다 날리고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추방된 처절한 상태였습니다(눅25:26). 그녀는 마지막 기대를 가지고 예수를 좇아왔던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여자에게 예수의 겉 옷깃만 만져도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녀의 믿음대로 고질적인 하혈은 그치고 새 힘이 그를 일으켜 세우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 여자가 나음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의 옷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데서 찾으려고 합니다. 과히 잘못 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24절과 31절에서 주님의 몸에 손을 댄 자가 한 둘이 아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여자만 유독 나음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주님의 ‘옷을 만졌다’는 데 있지 않고 옷만 만져도 낫겠다는 그의 ‘믿음’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그녀의 믿음을 특별히 칭찬하신 것을 보아도 강조되어야 할 부분은 그가 가진 믿음임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믿음을 세 단어로 표현한다면 ‘단순하고, 절실하고, 집요했다’는 점입니다.

어떤 점에서 보면 여자의 믿음은 유치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를 두 가지만 들어 보면 첫째, 여인의 믿음은 무식한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왜 그토록 수고롭게 활동하는지 별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병자를 고칠 수 있는 것은 그의 몸에서 일종의 마력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같습니다. 그래서 손만 대어 그 마력에 접할 수만 있어도 자기 병은 쉽게 나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여자의 믿음은 이기적인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로지 병 고치는 것만이 달성할 목적이었습니다. 옷을 만져서 병이 나으면 소리없이 사라지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위하는 철저히 이기적인 믿음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주님은 무식하고 이기적인 믿음을 가진 이 여인을 나무라시기는 커녕 칭찬하고 받아 들이셨습니다. 건강도 가정도 재산도 다 잃어버린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사생결단을 하려고 하는 여자, 12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눈물과 한숨으로 고통해야했던 여자 주님은 이와 같이 절박한 그의 상황을 다 이해하시고 그대로 용납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위로가 있고 다시 기도할 힘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처음 예수를 믿게 된 동기나 기도하는 내용이 다분히 맹목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우리의 간구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다 들어 주십니다. 그런 후 이 여인을 다루듯 우리를 다루어 주십니다. 어떻게 하셨나요? 무엇보다도 예수 자신에게로 관심을 돌리게 하여 주셨습니다. 병을 고치겠다는 자기 중심에서 그를 낫게 한 이가 어떤 분인지 알고 따르는 예수 중심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30-33절). 예수와 직접 만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우뢰와 같은 무리의 함성 속에서도 가냘픈 한 여인의 한숨 소리를 놓치지 않았듯이 자비로우신 주님께서는 힘없이 아픈 가슴을 억누르고 신음하는 우리의 기도에도 틀림없이 응답하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