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삶이 사면초가를 만났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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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성경의 수많은 스토리 가운데 가장 스펙터클하면서 익사이팅한 스토리가 출애굽기 14장에 나오는 ‘홍해도하’ 스토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430년이라는 기나 긴 노예 생활에서 벗어났으니 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감격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그 감격도 잠깐,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자유의 몸이 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죽음의 그림자였습니다. 뒤에는 자신을 잡으러 오는 애굽의 군사들, 앞에는 홍해 바다…. 진퇴양난, 사면초가! 이 상황에 그들이 생각한 첫 번째는 죽음이었을 것입니다. 군사들에 의해 살육을 당하든, 물 속에 빠져 죽든… 다른 방법,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기어린 불평과 원망이 지금 하나님 앞에서 치솟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14:11-12). 한 마디로 살 길이 없다는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들을 자유하게 하시고 곧 홍해(문제)를 만나게 하셨을까요? 이 의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출14:18절), –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출14:31).

첫 째는, 애굽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시려는 목적이었고, 둘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믿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앞이 막혀 길이 안 보입니까? 끝났다고 생각이 드십니까? 하나님이 길이고 방법이고 해답이고 소망이십니다.

구약성경에 홍해 사건이 있다면 신약성경에는 내용과 적용점이 매우 유사한 죽은 나사로의 사건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의도적으로 지체하시며 나사로의 죽음을 기다리시다가 나사로가 완전히 죽자 그의 집을 방문하십니다. 나사로의 두 동생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이 늦게 오셨기에 오빠 나사로가 죽었다고 원망하며 ‘끝났다’, ‘가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망이 아닌 소망을 말씀하십니다.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 이것은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있어서 0%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습니까?? 살아났습니다. 100%입니다. 예수님이 길이 되시고 방법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11:40)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나사로의 부활로 인해 마리아와 마르다 뿐만이 아닌 주변의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출14:15). 먼저 길을 열어주시며 나아가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나아가면 길이 열린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호수아 때도 요단강에 길을 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게 하신 것이 아니라,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넘실거리는 물에 발을 내딛었을 때 흐르던 요단강 물이 멈추어 길이 열렸습니다. – 궤를 맨 자들이 요단에 이르매 궤를 맨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건널새 여호와의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수3:15-17).

모든길이 막힌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믿고 나아가면,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방법이고 하나님이 길이고 하나님 그 분이 해답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