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금과 빛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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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박사(횃불재단 트리니티 목회학 박사 프로그램 담당)

주님은 우리에게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신다. 똑바로 살라는 것이다. 제대로 살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만약 그렇게 살지 않으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지옥에 가는 것일까? 그래서 지옥 가지 않으려면 똑바로 살아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서 대부분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천당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가는 것이지, 똑바로 산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대답은 믿음과 선한 삶을 서로 다른 것으로 전제한다.
그러면 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나? 왜 똑바로 살아야 하나? 그것은 올바르게 삶으로 천당에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착하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이기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대답하거나, 우리는 하나님 믿는다는 사람이니까, 하나님 이름에 먹칠하면 안 되니까,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대답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착하게 사는 것이 더욱 행복하고 하나님의 임재도 느끼고, 다른 사람에게 칭찬도 받으니까,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에 대한 대답으로는 약하다.
여전히 대부분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생각은, 착하게 살아야 천당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올바르게 사는 것이 좋다는 정도에서 멈춘다. 그리고 철저하게 믿음과 선한 삶을 구분한다. 구원의 확신을 선한 삶이라는 증거에서 찾지 않고, 예수가 나를 구원했다는 지적인 깨달음에서 찾으려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 대부분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이런 논리는 성화, 즉 선한 삶에 대한 당위성을 약하게 한다.
성경은 단 한 번도 믿음과 선한 삶을 구분한 적이 없다. 이 두 가지는 다른 것이 아닌 하나의 실체다. 칭의와 성화도 다른 두 가지가 아니라 하나의 실체다. 성화는 거룩해지는 과정을 뜻한다. 성화의 맨 처음 시작점이 바로 회심이요, 칭의요, 양자다.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이다. 믿음은 성화의 출발점이다. 이는 마치 삼각형의 꼭짓점과 같다. 성화가 2차원의 삼각형이라면, 믿음은 0차원의 꼭짓점이다. 그런데 꼭짓점은 스스로 있을 수 없다. 반드시 삼각형이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성화의 꼭짓점이라고 할 수 있는 칭의나 양자나 회심, 즉, 믿음은 성화라는 삼각형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꼭짓점의 수학적 값은 0이기 때문에 삼각형이 없는 한 꼭짓점은 사라진다.
또한 이는 마치 완전히 날카롭게 깎은 연필과도 같다. 이 연필심이 완전히 평평한 종이에 닿을 때 발생한 접점과 같다. 이 접점이 수학적 값은 0이다. 그러나 이 점은 존재한다. 하지만 연필이 없으면 이 접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믿음과 성화가 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