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명을 잘 감당하는 길

156

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갈릴리에서 베드로를 만나주신 주님은 그에게 위대한 소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고 치라.” 또한 그 소명을 감당할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번째 방법은 “나를 따르라” 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제자들은 공생애 기간 중
주님께서 행하신 사랑과 은혜의 사역들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렸을 겁니다. 찾아오는 자는 그
누구라도 내치지 않고 항상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맞아 주시던 모습,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까지도 사랑으로 품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심어 주시던 모습, 몸을 굽혀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직접 씻겨 주시던 모습, 새벽 미명만 되면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시던 모습, 십자가 희생을 앞둔 상황에서도 자신의 뜻 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길 바라며 깊이 기도하시던 모습….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교회의 제자들은 주님의
삶을 그대로 좇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주님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 전심을 다해
하나님 말씀을 배웠고, 그 뜻을 실천하는데 필요한 지혜와 능력을 구하기 위해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사랑과 화평을 누리기 위해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행했고, 가난한 성도들을 돕고 섬기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렸으며, 모일 때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유대인 사마리아인
이방인 가리지 않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교회에
구원받은 자들을 날마다 더해 주셨고, 교회는 로마 구석구석에까지 선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기독교 전문 여론 조사 기관이 최근 발표한 자료는 미국 교회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은 성경에 대해 무지하고, 전도하지 않는 교인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영적인 것 보다는 세속적인 것들을 더 좋아하고,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주장이 교회 안에 팽배해 있으며, 교회에 대한 신뢰가 실추되면서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명령이 교회 안에서 실종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나를
따르라”는 주님 말씀의 회복과 실천이 시급합니다.
두번째로 가르쳐 주신 방법은 다른 사람을 보지 말고 자기 자신의 소명에 집중하고 헌신하라는
겁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사건을 떠올려보면 주님의 교훈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초대한 마르다는 식사 준비로 바빴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시간을 보내다, 동생
마리아를 찾아보니 예수님 앞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겁니다. 마리아가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마르다는 즉시 주님께 가서 불평합니다. “저 혼자
일하는 게 안 보이십니까? 마리아에게 절 도우라고 명령해주세요.” 한가해 보이는 마리아를
보는 순간, 마르다는 다 잃어버리고 말았던 겁니다. 먼저 주님을 향한 사랑과 경외심을
잃어버렸고, 자매 간의 관계가 깨졌고, 주님과 제자들을 초대할 때의 처음 기쁨도 잃어버리고
만 겁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진리를 잊고 행동할 때가 많은 겁니다. 물론 사랑의 눈으로
형제와 자매들을 바라보면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경쟁하듯 비교의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 시기와 질투, 분노, 멸시 또는 교만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에 지배당하기 쉬운 겁니다.
로마서 12장 말씀처럼, 교회는 우리 몸과 같습니다. 우리 몸에는 눈 코 입 손 발 등 많은
지체가 있고, 그 지체들은 다 자기 고유의 기능을 가지고 일합니다. 모든 지체가 자기 역할을
잘 수행할 때, 그 몸을 건강하다고 말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라는 몸을 이루고
있는 멤버들이 자신의 소명을 주어진 자리에서 잘 감당할 때 건강하게 성장하는 겁니다.
이미 알고 있는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순종이 결과를 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