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통과 문화 2: 암호화와 의미화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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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목사(다솜교회 담임)

 

인간은 소통을 하는 존재입니다. 물론 인간만이 소통을 하는 유일한 존재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언어와 문자 그리고 기호를 사용하여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피조물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반역한 사건의 가장 끔찍한 결과 중의 하나는 창세기 11장 1절입니다. 그것은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였던 것이 파괴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소통에 깊은 단절과 장애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축복하시고 회복하실 때 하시는 일은 무엇보다도 소통을 회복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는 성령의 충만을 입은 제자들이 종족과 언어를 넘어서서 소통하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과 소통을 잘 하는 것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 소통을 잘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길이라 하겠습니다.

보다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암호화와 의미화의 과정입니다. ‘암호화’라는 말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언어나 또는 상징에 담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지고,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합시다. 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말을 하든지, 그 말을 기록한 카드를 보냅니다. 또는 말이나 글 대신 초콜릿이나 꽃을 사서 보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소통학에서는 암호화라고 합니다.

반면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이나 글 또는 그 상징으로 초콜릿이나 꽃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받은 그 암호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이것을 의미화라고 합니다. 문제는 ‘당신을 좋아한다’고 보낸 언어적, 비언어적 메시지가 꼭 그 의미로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흑심’이나 또는 ‘위험’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경험, 환경, 문화 등에 지배를 받는 의미화의 과정을 통해서 받은 메시지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통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는, ‘내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말을 듣는 상대가 ‘무엇이라고 듣는가?’에 있습니다. 이것을 수용자 중심의 소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다 효과적인 소통을 하고 싶다면,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를 생각하는 만큼, ‘내 말을 듣는 사람은 무엇이라고 들을 것인가’를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 문자, 상징을 아주 주의 깊게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정에서 자녀를 대할 때, 직장에서 동료를 대할 때, 그리고 교회에서 믿음의 친구들을 대할 때, 내가 하는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로 들려질지를 주의 깊게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의 소통의 능력은 한 단계 진보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