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이를 안으신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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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천국에 들어갈 자들의 믿음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마 18:3). 아이들의 순진한 모습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단순한 믿음을 가졌는지 아이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문을 읽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웃으신 기도”라는 내용으로 소개된 어린이들의 기도문입니다. “하나님,  제 이름은 로버트예요.  남동생이 갖고 싶어요. 엄마는 아빠에게 부탁하래고,  아빠는 하나님한테 부탁하래요.  하나님은 하실 수 있죠? 하나님, 화이팅!(로버트) “사랑하는 하나님,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대라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여동생이 눈을 찌르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데레사) “하나님! 하나님은 천사들에게 일을 전부 시키시나요? 우리 엄마는 우리들이 엄마의 천사래요.  그래서 우리들한테 심부름을 다 시키나봐요.”(마리아) “하나님! 요나와 고래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고래가 요나를 한 입에 삼켜버렸대요.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처음이에요. 그런데 우리 아빠는 이 이야기가 뻥이래요. 정말 못말리는 아빠예요.”(시드니) 아이들의 기도문속에서 단순하고 참된 믿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안아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자녀들을 데리고 왔을 때 제자들은 아이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꾸중하며 아이들을 막아 섰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놀라고 당황 했을까요? 아이들이 “예수님~”을 부르며 뛰어 오는데 제자들이 길을 막아 서면서 “이 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오는게냐? 얘들은 저리 가라!” 하고 호통을 쳤을 때 아이들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그 중에 몇몇 아이들은 제자들의 호통에 그만 눈물을 터트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보시고 노하시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 말씀하신 후 그 아이들을 친히 안아 주시고 그들에게 안수하며 축복해 주셨습니다(막 10:13-16). 놀라고,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들을 안아주시는 예수님, 얼마나 자상하고 사랑스러운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안아 주기 위해서는 그 팔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팔을 펼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양팔을 크게 벌리고 그 품으로 아이들을 안아 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안으셨을 때 그의 팔은 넓게 펼쳐졌습니다. 이때 주님이 펼치신 그 팔은 놀라운 복음의 상징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펼쳐진 팔은 보통 팔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펼쳐진 팔은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본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신 7:19),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신 26:8), “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왕하 17:36),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너희를 여러 나라에서 나오게 하며” (겔 20:34). 구약성경은 그분의 펼쳐진 팔을 이적과 기사를 행하던 능력의 팔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구원의 능력을 의인화하여 편 팔, 펼쳐진 팔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예수님의 편 팔은 구원의 팔이요, 능한 팔이요, 강한 팔이요. 이적과 기사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던 능력의 팔입니다.

그 구원의 팔이 언제 가장 능력 있게 펼쳐 지셨습니까? 십자가에서 그분의 팔이 펼쳐졌을 때 그 팔은 정말로 가장 능력 있는 구원의 팔로 펼쳐 지셨습니다. 바다를 가르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며,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고 가나안 이방 족속을 전멸시키실 만큼 강한 그 팔이 왜 이 십자가 위에서는 그렇게 가냘프고 힘없는 팔로 펼쳐져야 했습니까? 십자가 위에서 연약하게 펼쳐졌던 그 팔은 인간의 눈에 보기에는 아무런 힘도 없는 늘어진 팔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이 온 세상을 구원하고도 남을 만한 놀라운 구원의 편 팔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안아 주셨던 그 팔은 보통 팔이 아닙니다. 그 오랜 옛날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던 온갖 기적과 능력을 펼쳤던 그 팔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차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펼쳐질 팔로 그 아이들을 안아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그 편 팔로 우리를 안아 주기 원하십니다. 바쁘고 지친 일상에서 낙담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편 팔 안에서 구원과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