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옹달샘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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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회 최순봉회장

최순봉 한미상록회장(시카고)

 

골 깊은 산 속에 자생한 옹달샘은 아마도 땅속을 흐르며 뭍 생명의 근원이 되어주다 작은 웅덩이를 만나 고여 있다가, 그 산에서 나무하던 목마른 나무꾼도 마시게 하고 그 산에서 살고있는 산짐승도 목을 축이게 하는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차고 넘치면 작은 개울이 되고 개울이 되어 흐르다 또 다른 개울물을 만나면 거부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하나로 합치어지며 시냇물이 되어 흐른다. 시냇물이 흐르다 또 다른 시냇물을 만나도 합치어짐에는 거부가 없다. 그래서 강이 되어 흐르다 바다로 모여든다. 물론 옹달샘에서 출발한 물이 모두 바다에 모이기까지 숱한 변화를 말없이 감당하지만 물이란 본질로 돌아오는 섭리를 거역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한 물을 마시고 연명하는 사람은 역사란 대하(大河)의 섭리를 항상 거역하거나 넘쳐 흘러가며 변화하는 그 변화는 수용하거나 생각지 아니하고 고여만 있다고 생각하니 사고(思考)가 썩어 악취를 풍긴다. 그 단적인 예가 자신의 변화마저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동포사회에 자생한 어떤 단체의 한번 단체장을 역임하면 영원한 회장님이다. 그 단체장일 때 업적도 치적도 생각지 못하고 다만 회장이라 일컬음 받고 앞자리에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토라진다.

우리 사회에서 주어지는 어떤 사명(단체장이 아니어도)은 반드시 사역이 동반되고 그 사역은 감당했든 사람의 영광과 치욕을 가름하는 잣대가 되어 그를 측량하고 측량 된 가치는 역사란 대하에 합류한다. 이는 자의가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객관적이 힘에 의하여 그렇게 된다. 그런데도 분별 없는 사람들은 자신은 돌보지 않고 이웃을 제한하여 마치 자신의 추종자처럼 취급하려한다. 그리고 자신을 추종하지 않으면 적으로 돌리고 흑백논리만 적용하여 파벌을 형성하며 사회를 양분하려든다.

정말 어처구니없고 가소로운 현상이다. 한인 회를 비롯한 상공회의소나 아니면 내가 소속된 상록 회까지 포함, 살아 계신 전직 회장님들 자신의 임기 중 자신 있게 들어낼만한 자랑거리 좀 들어봤으면 좋겠다. 한인회장 임기 중, 논공행상에 빠져 봉사 상을 주고 후원금을 강요하여 행사비로 충당한 전직 한인회장을 제가 알고 있다면, 자신의 임기 중 재정잔고 0원 인수인계하며 별도 구좌관리하면서 전통성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 자신의 소속과 상관없는 사람이 자신이 반대하는 사람과의 교제까지 통제하려하는 못된 단체장이 있다는 사실 앞에 서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사람에게는 보장되어야 할, 인권이 있고 스스로 도야(陶冶)한 인격이 구비되어 있다는 생각 변함이 없는데 남의 인권을 무시하는 인격자는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런 사람들에게 그리고 화합을 염원하는 사람들에게 구정 새아침을 빌어 그 길을 이렇게 권한다. “정의를 회복하고, 남의 인권을 침해하지 말라”고 정의는 하나뿐이기에 정의를 회복하면 둘이 존재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인권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힘으로 지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신앙으로 제한 할 수 있는 것은 더 더욱 아닌 하느님이 지어주신 거룩함임을 명심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법은 죄를 심판하지만 죄는 인격의 가치일 뿐 인권은 아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심판은 죄가 아니라 선한 사람을 심판하여 죄인을 구원하시는데 있었다. 그 증거로 성경에서 하느님은 소돔과 고모라에 선한 사람 열 명만 있으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동성연애자가 그렇게 득실거렸지만 심판하지 않겠다 하셨고, 심지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시면서 까지 세상 죄를 용서하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