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용서에 감동한 이들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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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환 목사(시카고기쁨의교회 담임) 

“당신을 용서합니다.” 자신의 형을 총격 살해한 백인 여성 경찰 앰버 가이어(Amber Guyger)에게 피해자의 동생 브랜트 진(Brandt Jean)이 용서를 선언했다. 2018년 9월 6일, 앰버 가이어는 흑인 청년 보탐 진(Botham Jean)의 아파트를 자신의 집으로 착각하고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TV를 보던 보탐을 총을 쏘아 살해했다. 자기 집에 들어온 강도인줄 알았으며 충분한 경고를 했다고 해명했으나, 그녀의 휴대폰에 발견된 수많은 인종차별적 메시지와 당일에 어떤 고함이나 경고를 듣지 못했다는 이웃들의 증언이 나오면서 지난 2일 10년 형을 선고 받았다.

이 법정에서 희생자의 동생 브랜트 진이 한 말과 행동이 온 미국인들을 감동시켰다. 가해자를 한 인간으로서 사랑하며 용서한다고 말한 후, 그녀에게 다가가 포옹하며 서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지켜보는 모든 이의 눈물을 자아낸 감동스러운 장면이었다. 이 기사가 나간 이후 많은 사람들이 브랜트 진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특히 브랜트 진이 앰버 가이어가 주님을 영접하고 남은 삶을 그리스도에게 헌신하기를 바란다는 말에 크리스찬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브랜트 진의 용서는 아름답고 그의 용기는 분명 박수받기에 충분하다. 이런 고귀한 행위인 용서가 있어 우리는 복수와 증오가 아니라 사랑과 평화가 이기는 세상을 여전히 꿈꾼다. 하지만 이 사건이 그의 용서에 박수를 보내고 감동을 받고 끝날 일인가 묻고 싶다. 브랜트 진의 용서에는 고개 숙여 존경을 표하지만, 이 용서 행위를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기사들과 사람들의 감상적 찬사에는 의문을 표한다.

배심원단이 앰버 가이어에게 유죄 평결을 내림에 따라 최대 99년형 선고가 가능했고 검찰도 28년 형을 구형했었다. 그러나 법원은 5년 뒤 가석방 자격이 주어지는 10년 형을 선고했다. 예상외의 낮은 형량에 대해 분노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더구나 총격 전 경고를 보냈다는 가해자의 말이 거짓임을 증언한 조슈아 브라운(Joshua Brown)이 판결 바로 다음 날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다. 마약 거래 관련한 총격 사건이었다는 경찰의 발표가 있었으나 유가족들은 이의를 제기 중이다. 이 모든 항의의 목소리들이 브랜트 진의 용서를 찬사하는 목소리들에 의해 덮여지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용서는 개인과 개인 간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개인적 사건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적 문제들이 드러난다. 위안부 문제를 개인의 용서 차원에서 끝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해자 할머니들 중 누군가 ‘나는 그들을 용서한다’고 한다고 해도(가정일 뿐이다), 그것은 분명 한 개인의 용서일 수 있으나 일본이 한국이라는 한 국가에 저지른 범죄에 대한 용서의 선언을 대신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 사건이 인종차별의 구조적 악 속에서 일어났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사회는 흑인이 심지어 자기 집에서 있어도 안전할 수 없는 나라다.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들의 과도한 진압과 총격, 그리고 가해 백인 경찰에 대한 낮은 형량 구형은 이 미국사회의 인종주의가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용서는 죄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죄악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행위다.

브랜트 진의 용기가 값싼 용서로 끝나지 않게 하는 일, 기사를 읽으며 감동한 우리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