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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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다.” 미가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이 가슴에 확 와닿습니다.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뚜렷하게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공의를 행한다는 건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는 계명대로 살아가는 걸 뜻합니다. 인자를 사랑한다는 말은 연약한 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긍휼을 베풀며 살아가는 걸 의미합니다.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건 하나님과 함께 멍에를 매고 당신께서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걸 말합니다. 더 깊이 묵상해보면 이 세 가지 내용이 의미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는 방법과 모범을 다른 데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당신이 하시는 일을 보고 겸손하게 따라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자 공의를 행하심과 인자를 사랑하심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선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는 절대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먹으면 정녕 죽게 될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인간 사랑은 특별하셨습니다. 창조 때 인간에게 필요한 환경적 조건을 다 조성하신 후에야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오케이, 이번은 처음이니까 한 번 봐준다. 하지만 다음에는 절대 안 돼.” 이렇게 반응하셔야 더 자연스러워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단호하게 인간을 에덴에서 추방하셨습니다. 공의를 행하신 겁니다. 그런데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도 바로 뒤따랐습니다. 먼저 구원의 소망을 심어주셨습니다. 메시야를 통한 구원을 약속해주신 겁니다. 비록 에덴 밖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흑암의 땅에 내던져졌지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소망의 빛으로 품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겁니다. 가죽옷도 입혀주셨습니다. 짐승의 피를 통해 죄 씻는 길을 열어주신 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에 짓눌려 살지 않도록 숨통을 열어주신 겁니다. 인자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모범을 보여주신 겁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표출된 가장 대표적인 장소 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진 아들의 생명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레위기의 제사법 대로,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어 인간의 죄를 짊어진 아들을 그저 화목 제물로 다루신 겁니다. 하나님께선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그것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할지라도, 변함없이 공의를 행하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그렇게 죽이신 이유는 바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기 위함이셨습니다. 우리에겐 이처럼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죄인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살리려고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겁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입니다.

뉴욕엔 라구아디아라는 인물의 이름을 딴 공항이 있습니다. 라구아디아는 훌륭한 법조인이었고 정치인이었습니다.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 굶주림에 지쳐서 빵을 훔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노인에게 판결을 내려야 했습니다. 라구아디아는 노인에게 10달라의 벌금형을 내렸습니다. 형 선고 직후, 그는 자신이 벌금을 대납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뉴욕에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정치를 잘못한 제 잘못을 인정합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라구아디아는 노인에게서 모자를 빌려 법정을 찾은 사람들에게 돌렸습니다. “이 노인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즉석에서 47불이 모금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공의와 긍휼을 실천하는 것…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