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에 주린 자

0
816

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하나님 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길은 의에 주린 자로 사는 겁니다. 의에 주린 자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반드시 행하는 자를 말합니다.

요한복음 4장은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식사도 못하신 채 장시간 걷던 주님은 너무 지쳐서 사마리아 지역의 한 우물가에 앉아 쉬셔야 했습니다. 제자들이 빵을 구하러 근처 마을로 간 사이, 마침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옵니다. 여인은 마음의 공허함을 채워보려고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꿔보았지만 여전히 빈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 불쌍한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셨고, 여인은 자신이 대화를 나눈 분이 모든 사람이 기다리는 바로 그 메시야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여인은 벅찬 가슴을 안고 마을로 달려가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돌아온 제자들은 식사를 권해드렸고, 이때 주님은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는데, 그 양식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온전히 이루는 것이란다.” 육신의 주림은 밥을 먹어야 해결되는 것처럼, 영혼의 주림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채워진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잃은 영혼들을 살리는 겁니다. 주님은 이 뜻을 행하기 위해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 결과 주님의 영혼은 하나님 표 행복으로 가득 채워진 겁니다. 여인의 외침을 듣고 사마리아인들이 몰려왔을 때, 주님은 즉시 기쁨과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미 육신적 피로와 허기는 깨끗이 사라지고 말았던 겁니다.

의에 주린 삶을 살기 위해선 한 가지 영적 원리를 가슴에 새겨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침례와 광야에서의 시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심하면 일교차가 섭씨 40도 이상 차이날 정도로 혹독한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던 주님께 다가온 마귀는 제일 먼저 예수님의 육신적 필요를 건드렸습니다. 돌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한 겁니다. 40일을 금식하신 주님, 그리고 그 정도의 기적은 쉽게 행할 수 있는 주님껜 큰 유혹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께서 이 시험을 허락하신 뜻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육신의 정욕을 자극하는 사탄의 시험 앞에서, 아담처럼 넘어지지 말고, 이겨내길 원하신다는 걸 확실히 알고 계셨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명기 8장 3절 말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선포하심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셨습니다. 바로 이 장면이 의에 주린 삶을 살기 위해 꼭 기억해야 할 소중한 영적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우선 순위를 확실하게 정하고 지키는 겁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의 세 친구는 영적 위험에 직면합니다. 바벨론 왕이 거대한 금신상을 세워놓고 모든 백성들에게 절하라고 명령한 겁니다. 절하지 않는 자들은 다 풀무불에 던져넣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다니엘의 친구들은 주저하지 않고 자기 신앙을 택합니다. 그들이 왕 앞에서 한 말이 도전이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풀무불 속에서도 건져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우리는 결코 신상에게 절하지 않습니다.” 의를 최우선으로 삼고 살아가는 삶의 모범을 보여준 겁니다. 그 결과 친구들은 하나님표 행복을 넘치게 누릴 수 있었습니다. 불 속에 오셔서 자기들을 건져주신 하나님을 체험했고, 이방 왕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장면을 볼 수 있었던 겁니다.

COVID-19과 같이 혹독한 환난 속에선 우선순위가 흐트러지기 쉽습니다. 처한 환경 하나하나를 변명 삼아 육신의 주림을 채우는 일에 더 집착하기 쉬운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는 만족은 휘발성이 강합니다. 금방 사라져버리고마는 겁니다. 초월적이고 완전하며 절대적인 하나님 표 행복을 누리는 길은 의에 주린 삶을 최우선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고 실천하는 지혜자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