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장벽을 시소로, 총기를 기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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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환 목사(시카고기쁨의교회 담임)

뉴스를 보며 울컥할 만큼 반가운 건 퍽 오랜만이다. 더구나 비극의 상징인 미국-멕시코 국경으로부터 들려온 따뜻한 소식이라니. 철제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설치된 분홍색 시소가 사람들 마음에 꽃을 피웠다. 시소의 한 편은 미국 쪽에, 다른 한 편은 멕시코 쪽에 놓였다. 선 긋기 좋아하는 어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선 잇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몰려들어 시소를 탄다. 국경에 흐르는 비장함이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허물어진다. 내가 오르면 네가 내려가고, 네가 내려가면 내가 오른다. 한 쪽의 움직임이 다른 한 쪽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아이들은 놀면서 배운다. 평화는 이렇게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이 기가 막힌 상상력의 주인공들은 로널드 라엘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와 버지니아 산 프라텔로 새너제이 주립대학 부교수. ‘인간이 만든 장벽의 쓸모없음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시소를 구상한 지 10년 만에 현실화한 것이라고 한다. 시소 하나 세우는데 10년이나 걸리나 싶지만, 국경 울타리를 뚫는 것보다 사람들의 닫힌 마음을 뚫는 것이 더 어려웠으리라. 그래서 더 고맙다. 포기하지 않고 편견의 장벽에 균열을 내 준 그 마음씨가 고맙다.

그 선한 마음만큼 부러운 건 상상력이다. 누군가는 장벽을 세우고, 누군가는 장벽 세우는 이를 비난하는데 그친다. 그런데 이들은 장벽을 놀이 기구로 바꾸어 버렸다. 철제 울타리가 시소의 중심축이 되었다. 반목의 상징이 평화의 도구가 되었다. 이런 유머라니, 이런 상상력이라니. 시대가 암울할수록 더욱 절실한 것은 이런 감각이다. 그리스도인이 해학을 잃고 경직되어 산다는 건 넌센스다. 우리는 기저귀를 차고 이 땅에 오실 만큼 유머와 상상력이 넘치는 분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 아니던가.

영화 <웰컴투 동막골> 하면 떠오르는 명장면이 있다. 국군과 인민군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대치하고 있는 초긴장 상황, 옥수수 창고에 수류탄이 터지며 팝콘이 하얀 꽃눈이 되어 하늘에서 내렸다. 모든 긴장과 불안을 일순간 해소시켜 버리는, 지금 생각해도 감동과 위트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언젠가 방송인 김제동 씨가 ‘(내 고향은) 종북이 아니라 경북이다’라고 했을 때, 이 장면이 떠올랐다. 그야말로 빵 터졌다. 팝콘이 눈꽃처럼 내렸다. 종북 몰이가 종북 놀이가 되었다. 모두가 긴장한 상태로 대립하고 있을 때, 아! 우리에게도 머리에 꽃 꽂고 수류탄 핀을 가락지인줄 알고 뽑는 여인이 필요한 걸까?

지난 주말, 텍사스와 오하이오에서 총기 난사로 31명이 목숨을 잃었다. 시카고에서도 지난 주말 총격 사건으로 7명이 사망하고 48명이 부상했다. 피해자 중에는 5살 어린이도 있었다. 속지 말자. 총칼로 지켜지는 평화는 가짜다. 누군가가 말했듯, “평화에 이르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다.” 평화롭지 못한 길을 통해 얻어지는 평화는 없다.

유엔 본부 투어 중에 총을 개조하여 기타로 만든 전시물을 본 적이 있다. 이 작품의 이름은 escopetarra, 스페인어로 총과 기타의 합성어이다. 이 아픔의 시대에 절실한 상상력이다. 총기로 기타를, 장벽으로 시소를! 자, 이제 우리 세상의 모든 총을 쳐서 기타를 만들자. 총기 귀신이여,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저들에게서 나오라. 총알이 아닌 평화의 음악이 발사되는 날, 우리 모두 한바탕 웃음으로 춤을 추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