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시에 작전 중인 군인을 동원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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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권 목사(크로스포인트교회 담임)

한국에 나가 문제가 생겨 다투게 되면 무조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을 간혹 듣습니다. 잘 잘못이 어느 편에 있던, 문제가 무엇이던, 따지기 전에 상대를 제압하여 이기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입니다. 비좁은 땅에 태어나 토너먼트 경기하듯 끝없는 경쟁과 승부 속에 살아가는 데 익숙한 터인지라, 상대를 이기는 것이 우선이고, 생존의 수단과 목적이 되어 버린 듯합니다.

남북이 이념으로 대립하고, 동과서가 갈리고, 노조가 회사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가 하면, 노인층과 젊은 세대가 ‘꼰대와 철부지’로 갈등하고, 정권을 잡은 자들과 이를 탈환하려는 세력들이 ‘백성을 위한다.’는 구실로 불철주야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과연 언제까지 이 편 가르기와 서로를 향해 질러대는 고성 아닌 괴성을 들어야 하는지, 피로하기 도하고 귀도 먹먹하며 혼란스럽습니다. 그저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황금만능과 찰떡궁합으로 행복한 보금자리를 잡은 나라인 듯. 어느 것이 좋은 것이고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어디까지가 감성의 영역이고, 또 어디까지가 이성의 영역인지, 경계선이 희미해 갑니다.

66권의 성경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들라면, 다윗 왕과 하나님이 서로 집을 지어주겠다고 ‘오퍼’하는 사무엘 하 7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한 다윗은 옮겨만 다니는 ‘텐트’ 성전을 건물로 지어드리겠다고 고백하고, 다윗의 고백에 감동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대대에 이르는 영원한 집과 그 집을 다스릴 보좌를 약속하십니다. 이름하여 다윗의 언약.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드리겠다.’는 고백은 참으로 멋있는 훌륭한 생각이 지만, 전시에 작전 중인 군인을 동원하여 성전 공사를 하다는 것은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으로 판단 한때 옳은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 적임자가 아니고, 지금은 성전 건축의 적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기는 감동 받을 만한 Good Idea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실현 가능한 Right Idea는 아닙니다.

헤브론에서 왕이 되어 7년 반을 통치한 다윗은 난골 불락의 게릴라 본거지 시온성 혹은 다윗 성이라고 부르는 예루살렘을 빼앗아 수도를 옮긴 후, 제사장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언약궤를 옮겨 올 때의 일입니다. 제사장에게는 아효와 웃사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집 마당에 있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던 날, 새 수레를 만들고 언약궤를 싣고 소를 몰아갔습니다. 수레가 다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휘돌기는 막대기에 놀란 소가 뛰는 돌발 사태가 발생했고, 궤를 뒤 따라가던 웃사는 궤가 땅에 떨어지지 않게, 순간적으로 손으로 붙잡아, 궤는 안전했으나 웃사는 그만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순간적인 판단에, 땅 바닥에 떨어져 박살날지도 모르는, 언약궤를 잡은 것은 좋은 생각 이였지만, 하나님의 율법에 금지된 방법을 사용 한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것은 감성의 영역을, 옳은 것은 이성의 영역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사물의 원리와 이치를 알아내어, 본능이나 충동, 욕망 등에 좌우되지 않는 도덕적 법칙을 만들고 그것에 따르는 능력을 이성이라 정의 하고, 사람마다 환경에 따라 순간적 느끼는 감정으로 대상과 정도가 천차만별한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을 감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구원을 말씀하실 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3:32)며, 옳은 것 즉 이성의 영역인 진리로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