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절름발이 왕 손자’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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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권 목사/크로스포인트교회 담임

 

정(情)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이 있습니다. 은은하면서 구수하고 수즙 으면서도 진하고 잔잔하면서도 깊은 독특한 맛을 가졌습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문화를 가진 서양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고 말이나 글로 다 아우르는 표현을 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사랑이라는 말도 정과는 다른 영역을 가진 듯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랑은 사람을 미워 할 수도 있지만 정은 미워했던 마음도 되돌린다.” 거나 “사랑은 상큼하고 달콤하지만, 정은 구수하고 은근하다.”는 등으로 ‘사랑보다 깊은 정’을 말합니다. 삶의 희로애락을 만들어 주기도하고 때로는 무서운 폭력을 휘두르며 이뤘던 것들을 부수는 파괴자, 그래서 사람들은 “이 놈의 정 때문에 ….” 하고 한탄도하며 후회도하고, 다시 돌아서서 관계를 회복하기도 합니다. 애증의 관계를 함축하는 ’고운 정 미운 정’, 일단 정이 들면 잘못이나 흉도 이해하고 용서하여 받아 주라는 ‘정 각각 흉 각각’ 또 너무 가깝게 정이 들다 보면 ’정에서 노여움이 묻어 나온다.’고도 하니, 한국인 우리들의 인간관계에서 정은 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과 뒤를 이을 사위 다윗의 야릇한 애증과 대립, 반목과 질시는  성경의 유명한 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다윗은 ‘아이러니’하게 적과 전투에서 승승장구하여 큰 성과를 올리지만 사랑받아야 할 장인 사울의 강력한 ‘라이벌’이 되고 맙니다.  자신의 위치를 한참 벗어나 하나님의 눈 밖으로 나간 사울이 팔레스타인과의 전투에서 세 아들과 함께 전사하던 그날, 손자 무비보셋도 유모의 등에 엎여 왕궁을 빠져나가다가 유모의 실수로 등에서 떨어져 두 발이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으니 사울 가문이 몰락의 내리막길을 막는 브레이크는 없었습니다. 곧 이어 왕위에 오른 다윗. 당장 급한 불을 끄고 주변을 둘려보며, 사울의 맏아들, 사랑하는 친구며 왕세자였던 생명의 은인 요나단을 생각합니다. 자기 목숨보다 다윗을 더 사랑하며 위기 마다 도움을 준 요나단! 전국 방방곡곡을 다 뒤쳐 사울의 인척들을 찾던 다윗은 인적 드믄 불모지에 숨어 지내는 요나단의 아들 무비보셋, 아버지 꼭 닮은 그를 보는 다윗의 마음은 쇳물처럼 뜨겁게 가슴을 흘러내립니다. 무서워 떨며 영문도 모르고 불려온 절름발이 왕자 무비보셋에게 아버지 요나단으로 인해 은총을 내리고 할아버지 사울에게 속한 모든 재산을 돌려주고 오늘부터 내 상에서 식사를 하게 한다는 다윗을 향해 절을 하며,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삼하 9:8)하고 감격합니다.  무비보셋은 아버지의 요나단을 인하여 평생 왕궁에 머물며 왕과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유모의 실수로 절름발이가 되고 왕국의 몰락으로 숨어 지냈으나 아버지 요나단의 우정으로 다윗의 은혜를 입고 왕자의 자리로 되돌아왔습니다. 비운의 절름발이 왕 손자 무비보셋! 그는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우리도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죄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를 행 할 수 없는 절름발이 입니다.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선택 없이 죄를 지어 죄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워 숨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를 다시 찾으신 하나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 시켜 주셨습니다.  무비보셋이 그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서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윗의 은혜였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나 죄 가운데 살며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한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