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짝퉁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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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선한 이웃 교회 담임/미육군 군목

네바다 주의 사막 한 가운데 휘황찬란하게 만들어진 도시, 라스베가스엔 세계의 주요 명소들을 상징하는 조형물들을 도심가운데 많이 만들어 놓았습니다. 번화한 도심길을 따라 걷다보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탈리아의 베니스, 프랑스의 에펠탑,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고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등을 마주치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같은 건축물들을 아무리 세련되고 멋지게 만들어 놓았을 지라도 베니스의 마르코 광장이나, 파리의 웅장하고 화려한 도시, 이집트의 광활한 사막, 그리고 거친 바다 바람을 맞으며 오랜 세워을 견디어 온 뉴욕의 여신상과는 도저히 견줄 수조차 없는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것들입니다.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잠시 친밀감을 갖게 하는 대용품이 될 지는 모르지만, 진짜의 건축물들에서 경험하게 되는 감동과는 비교할 수없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형물들일 뿐입니다.  마치 엄청난 크기의 골프장을 축소하여 만들어 놓은 미니에이쳐 골프코스와 다를 바 없는 듯 합니다.

 

성경에서도 구약성경의 많은 이야기들이 장차 오실 메시야 예수님에 대한 모형들 곧 “그림자”로 소개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림자란 실재를 제한적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만 보여줄 뿐, 엄청난 실재의 입체적 모습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종교개혁가 죤 칼빈은 성경의 모든 이야기들 속에서 부분적이지만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삭은 희생의 제물로 드려진 예수님의 그림자이며, 야곱은 자기에게 맡겨진 양을 치는 목자되신 예수의 모습이며, 요셉은 자신을 버린 형제들을 품고 용서한 자비가 가득한 예수님의 형상이며, 멜기세댁은 영원한 제사장되신 예수의 그림자요, 모세는 성령으로 우리의 가슴판에 하나님의 율법을 새기시는 예수을 상징하며,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까지 인도하는 우리 인생의 대장되시는 예수의 모습이고, 다윗은 모든 대적자를 물리치며 승리를 안겨주는 왕되신 예수이고, 솔로몬은 축복과 평화를 가져오는 승리의 왕이며, 삼손은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대적의 간담을 서늘케한 힘과 능력을 베푸는 예수님의 모습였다고 소개합니다. (John Calvin, writing in the preface to Pierre-Robert Olivetan’s, 1535)  성경에서 소개된 모든 이야기들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한 부분적이며 제한적인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이제  그 실재의 예수님께서 유대 갈리리에 오셔서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펼쳐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을 읽으십니다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누가복음4:18-21) 성경의 모든 그림자와도 같던 약속들이 드디어 “오늘 온전히 이뤄졌다”(Today this Scripture is fulfilled)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 성취가 예수님에게서 다 이뤄졌노라는 엄청난 선포였던 것입니다.  가난한 이에겐 밥이 주어졌고, 눈 먼 자에겐 다시 보는 일이, 갇힌 자가 해방되어 지고,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기적들도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실재이신 예수님을 보여주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사람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물고기 두마리와 떡덩이 다섯개로 수천의 사람들이 먹고도 남는 기적을 보았을 때, 그들은 “떡”에 취하여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보지 않고는 도저히 예수님을 믿지 않는 심령의 완고함을 드러내었습니다. 떡과 기적에 노예가 되어 그림자만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영원한 생명의 실재이신 주님이 그들 눈앞에 서계셔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주님은 모세 때의 만나의 기적의 예를 들어 사람들의 무지함을 깨우치려 하셨을까요?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신비한 양식, ‘만나’를 먹었으나, 그들 또한 다 “죽었다”고 일깨워 주십니다. 그들은 만나에 눈이 가려져서 진정한 “생명의 떡”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라스베가스에 세워진 에펠탑앞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파리를 다 갔다온 것처럼 착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림자와도 같은 껍데기만 붙잡는 짝퉁의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까 두렵습니다. 생명과 진리되신 살아계신 주님의 은총가운데 늘 주님의 “실재”를 경험하는 믿음의 역사가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