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피아니스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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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희(인디애나 음대 반주과 객원교수)

악보를 보고 처음부터 바로 연주를 하거나 노래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초견 또는 사이트 리딩(sight-reading)이라고 한다. 콘서트나 콩쿠르에서 솔로 곡을 연주할 때에는 이미 오래 전에 연주할 레퍼토리가 정해지고 준비 기간이 길기 때문에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피아니스트가 성악가나 다른 악기 연주자를 반주할 때, 또는 여러 개의 악기들이 함께 연주하는 챔버 뮤직에서는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연습한 적도 없는 곡이라고 하더라도 악보를 보면서 즉석에서 바로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후천적인 훈련에 의해서 초견 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 특히 피아니스트에게는 초견이 중요한데, 반주를 해야하는 경우도 많을 뿐더러, 단선율 악기가 아니기 때문에 항상 왼손, 오른손 두 단의 악보를 빨리 익히려면 얼마나 초견이 좋은가에 달려있다. 음악적이지 않은 연주는 아무런 의미가 없듯, 초견 연주를 할 때에도 음표만 치는 것이 아닌, 그 곡이 정의하는 음악성을 생각하고 그것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읽는 속도가 빠르 듯, 악보도 많이 볼 수록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 같은 곡을 연습하더라도 악보를 빨리 읽는 사람들은 그만큼 곡을 연습하는데 있어서 시간이 단축될 뿐만 아니라 음악이 전체적으로 매끄럽게 완성된다.

초견을 잘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눈의 움직임이다. 악보를 보면서 연주를 할 때, 현재 치고 있는 음표보다 앞으로 칠 음표를 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첫 음을 치고 있을 때 눈은 두번째 음을 보고 있어야 하며, 두번째 음을 칠 때 눈은 세번째 음을 보고 있어야 한다. 깨알 같은 악보를 눈으로 읽다 보니, 시력이 저하되는 점은 피아니스트에게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초견을 잘 하는 방법 중의 또 하나는 적절한 손가락 번호다.  악보를 처음 볼 때에는 피아노 건반을 내려다 볼 수가 없다. 악보와 손가락을 번갈아 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손가락의 감각으로 어느 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적절한 손가락 번호를 사용하여 악보만 보고 연주를 해야한다. 초견 연주를 할 때에는 멈추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실수를 한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연주하고 박자를 셀 수 있는 관리 가능한 속도로 연주해야 한다. 실제도 초견으로 연주를 해야하는 상황들이 간혹 있다. 독창회 반주를 한 적이 있는데, 성악가가 프로그램이 다 끝나고 앵콜 곡을 하고 싶다며 무대 위에서 악보를 주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비교적 쉬운 곡이어서 잘 마무리 할 수 있었지만, 순간 무대 위에서 어찌나 당황했던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모차르트나 리스트는 초견 실력이 아주 훌륭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즉흥 연주 실력이 음악가의 자질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초견 실력이 좋아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 피아노를 어릴 때 배운 사람들은 한번 쯤은 체르니를 쳐 보았을 것이다. 그가 쓴 연습곡은 오늘날에도 피아노 교본으로 널리 쓰이고 있고, 또한 그는 베토벤의 제자이자 리스트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어린 리스트를 모차르트처럼 만들고 싶었던 리스트의 아버지는 8살 아들을 체르니한테 데려갔는데, 체르니는 리스트의 초견 실력을 보고 하늘이 내린 피아니스트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책을 읽듯이, 체르니 악보를 꺼내서 읽어보면 어떨까. 처음에는 느리지만 매일 조금씩 읽는다면 하나의 곡이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