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나님의 은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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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중세 기독교 역사 속에서 뛰어나게 착했던 사람들을 가리켜서 후대는 ‘성자’(saint)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성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모두가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경우를 봅니다. 성경은 노아 당시에 모든 사람의 생각이 항상 악했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악한 모습으로 살 때 노아만은 의롭게 살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성경은 –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8)고 말씀합니다. 노아는 처음으로 은혜를 입은 자요 최초의 의인으로 불리워진 자입니다. 노아가 노아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이 은혜였습니다.

가톨릭은 구원은 교회가 베푸는 초자연적인 은총인 성례전에 인간이 참여하면서 점점 신성하게 된다는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가톨릭의 구원관에는 인간이 무엇인가 노력하고 공을 들여야 한다는 사상이 팽배합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교황의 교령에 기초한 것입니다. 천주교는 구원에 있어서 ‘이행득구주의’ 입니다. 구원은 행함으로 얻는다고하는 곧 ‘공덕 축적설’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루터는 그것이 비진리인 것을 깨닫고 ‘오직 은혜’를 말했습니다.

늘 행위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현실의 벽 앞에서 자신의 한계성을 절감하며 움츠리고 살았던 루터는 성경을 통해 ‘오직 은혜’라는 진리를 깨닫고 ‘나는 그때 천국 문이 나에게 열리는 것을 보았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너무도 기쁜소식이었습니다.

복음을 깨달은 루터는 인간이 믿음을 결정하는 것조차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의 역사일 뿐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절대 복음을 받을 수 없고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뜻합니다.

성경은 – ‘모든 사람은 죄인(롬5:12)’이며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고 말씀합니다.

스스로는 어떻게 할 길이 없는 사망에 놓인 인생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 은혜로 죄인들이 죄 씻음을 받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4).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혜라는 단어가 ‘대가 없음’을 뜻하는 말이라면, ‘오직 은혜’의 의미는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일 뿐, 인간이 행한 어떤 일에 대한 보상이나 대가가 아니라는 뜻이 분명합니다.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받을 자격이 없는 인간에게 오직 은혜로 구원의 선물을 주시는 이유에 대해 사도 바울은 ‘죄인 된 인생을 불쌍히 여겨주신 하나님의 자비하심, 그 사랑’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엡2:7).

오직 우리가 다 측량할 수 없는 은혜, 너무 커서 은혜가 은혜인줄 모를 만큼 큰 은혜,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의 자녀가 된 것이며, 그 은혜 안에서 오늘도 우리가 신앙인으로 설 수 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