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주신 가죽 옷

22

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담임)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범죄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든, 안 다니는 사람이든 대부분 잘 알고 있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잘 살펴보면 이 아담의 범죄 기사에 약간 이상한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3:9)고 부르실 때에 아담은 갑자기 숨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숨은 이유가 좀 이상합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명령을 어긴 바로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볼 면목이 없고 두려워서 숨고 피한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부분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은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피한 것이 아니라, 벗은 것이 부끄러워서 피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3:10). 그러나 그가 벗은 것을 부끄러워하여 숨었을 때 그는 이미 자기가 손수 나뭇잎 치마를 해 입은 뒤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비록 나뭇잎이기는 하지만 옷을 해 입고 있었는데도 왜 하나님이 찾으실 때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벗은 것이 부끄러워서 피했다고 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왜 아담의 나뭇잎 치마 대신에 가죽옷을 해 입히셨을까요?  과연 선악과를 따먹었더니 정말로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말처럼 눈이 밝아지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발가벗고 있는 모습이 부끄러운 것임이 깨달아진 것입니다. 정말로 선과 악을 알게 된 것입니다. 벗은 것이 선이 아니고 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단의 말도 이 부분까지는 맞았지만 그러나 그 다음부터 완전히 틀려 버렸습니다. 사단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천만의 말씀!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벗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이 보일까 봐 숨어 버리는 불행한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부끄러운 것을 알고 난 후에 오늘까지도 옷을 해 입고 다닙니다. 가식의 옷을 해 입습니다. 부지런히 옷을 해 입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4장 13절은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을 통해서 우리는 선과 악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부끄러운 모습도 볼 수 있게 되었고, 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부끄러운 존재인 것을 율법은 깨닫게 해 줍니다. 그러나 그 율법이 나의 깨달아진 죄를 가려 줄 수는 없습니다. 단지 깨닫게 해 주는 효능만 있을 뿐입니다. 눈이 밝아지는 효능만 있을 뿐이지 그래서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보게 되는 효능만 있을 뿐이지 그것으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가려서 하나님처럼 되게 하여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설수 있게 하는 효능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선과 악을 가르칩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교육을 하며 선과 악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문제는 선악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내 자신의 부끄럽고 죄 된 악한 모습이 발견되었을 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틀리다는 것입니다.

모두 인간의 손으로, 내 자신의 손으로 나뭇잎 치마를 해서 입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뭇잎 치마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나뭇잎 치마를 벗기셨습니다. 그리고 동물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죄를 씻으려면 반드시 누군가가 피를 흘려야 하기 때문에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동물을 희생시키고 피 묻은 가죽을 손수 벗기셔서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이 동물은 아담의 부끄러움을 가려 주기 위해서 피를 흘리면서 대신 희생되었습니다. 나뭇잎 치마로는 안되기 때문에 피 흘린 가죽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 가죽옷은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부끄러운 모든 죄의 문제는 오직 예수님의 피로만이 가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뭇잎 치마는 율법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요, 그 치마로는 자기의 부끄러움을 온전히 가릴 수 없었던 바 구원은 절대로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님을 이미 창세기 시절부터 하나님께서 보여준 것입니다. 이처럼 아담 하와에게 은혜로 입혀 주신 그 가죽옷은 바로 예수님의 예표 였던 것입니다. 아담과 같은 죄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