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00세 시대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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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선한 이웃 교회 담임/미육군 군목

이웃교회에 손녀 둘을 두신 목사님이 어느날 문뜩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그거 아세요? 아직 저희도 청년입니다!” UN에서의 연령구분의 기준이 2015년이후부터 바뀌어져서18세부터 65세까지는 청년으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물론 장년은 65세를 넘어 80까지라고 합니다. 이제 80세를 넘겨야 씨니어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꾸준히 증가하여 이제 100세 시대에 돌입하였습니다.  물론 우리 신앙인들에겐 영적인 수명, 곧 영적 정신적 수명의 건강함은 더욱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처럼, 소년과 장정이라도 피곤하여 넘어질 수 있지만,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가 날개치며 창공을 향해 날아 오르듯, 우리 안에 속사람은 나이를 먹을 수록 더욱 신앙의 깊이가 깊어지고, 그 높이가 더욱 높아지는 모습을 갖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아마도 성경에 소개된 야곱이라는 인물은 그와같은 인생을 살아간 사람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노구의 몸을 이끌고 잃어버렸던 아들 요셉을 만나기위해 애굽에 온 야곱은 그 땅의 총리가 된 아들로 인하여 이집트의 왕 바로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그의 나이를 묻는 바로왕에게 이렇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년이요, 내 나이가 얼마 못되나,… 험악한 세상을 살았나이다.” 오랜 세월을 삶아온 그의 생애는 참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이었습니다. 형 에서와의 불화로 인해 광야길로 도망해야 했던 삶, 외삼촌 라반을 통해 겪은 친인척의 배신, 딸이 당한 강간,… 견딜 수 없는 인생의 수많은 아픔들 중에서 가장 가슴아팠던 것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광야의 들짐승들에게 물려죽은 아들의 찢겨진 옷을 붙잡고 그는 견딜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지냈던 것입니다. 이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을 만났고, 그 아들이 낳은 자식들까지 보면서, 오랜 인생을 살아온 야곱이 이렇게 감동적인 신앙의 고백을 남깁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El Shaddai)입니다. 주님은 내 인생에 목자(Shepherd)이십니다.” 그의 삶은 그의 이름이 말해주듯 누군가의 “발꿈치를 붙잡는 자”(Heel Catcher)였습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선 누구가를 넘어뜨리고서라도 이를 악물고 살아왔던 집념의 사람였습니다. 그같은 야곱의 삶의 변화는 그의 이름조차 바꿔야 했던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죽음앞에선 두려움으로 이제 그는 하나님만 붙잡는 자가 되었습니다. 밤새워 기도하며 누군가의 발꿈치를 붙잡으며 살아왔던 자가 변화되어 이젠 “하나님과 더불어 싸워가는 자” (Striver with God) 가 되어졌던 것입니다.

비록 야곱의 눈은 어두워졌고, 몸은 가누기 조차 힘든 147세의 노구가 되었지만, 어두워져가는 그의 눈앞에 하나님은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임종을 앞둔 그가 이렇게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자식들앞에 남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같은 인생속에 함께하신 하나님(God of Wilderness)이며, 어머니 품에 안긴 자녀에게 젖(Shaddai)을 물리듯 내 인생에 부족함이 없도록 채우시는 하나님(All Sufficient God) 이시라.” 그에게 있어 하나님은 바로 ‘엘샤다이”의 하나님 이셨던 것입니다. 그가 손을 펴서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위해 축복할 때에도, 손을 어긋맞아 그들의 머리에 얹고는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자손에게 남기는, 죽는 순간까지 어두어지지 않는 영안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급격히 증가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평균수명 만큼이나 더욱 중요한 것은 조로하지 않는 건강한 신앙을 간직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깊은 영성을 가직하며 하나님을 사랑했던 야곱처럼, 우리의 신앙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더 깊어져 가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