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화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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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회 최순봉회장

최순봉 한미상록회장(시카고)

 

나는 지난 십 수년간 동포사회에 회자되는 “동포사회의 화합”의 필요성에 대한 언급을 수도 없이 많이 들어왔고, 화합의 방법으로 “서로 쪼금씩 양보하면” 혹은 양보해야 된다란 방법론에 머물러 진정한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실감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서로가 감당해야 할 “쪼금씩”이란 이 한계가 얼마만큼 인가 그 분량을 설정할 수도 없거니와, 만약 양보할 분량을 갖고있지 못하고 전부 빼앗긴 사람에게도 더 양보하라면 그들이 가진 것은 생명 뿐, 그것마저 내려놓고 죽은 듯 살던지, 살아서 숨만 쉬고 말도 하지 말란 뜻이고 만다. 이는 탄압이다. 물론 화합의 필요성을 말하는 그 바탕에는 분열되었음을 의미하는 상대적 환경이 이미 설정되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인류사회는 인류의 수효만큼 서로 다른 모양(형상)과 생각으로 구성 된, 그 근본이 하나의 정의(正義)에 구속되어 하나의 평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피할 수 없는 사람의 한계는 대개 돌아보지 않는다. 여기서 정의가 바로 적립되지 못하면 분리되고 분리되면 개인이기와 상호 집단이기가 상충하며 분쟁이 시작되고 평화를 저해한다. 그래서 화합의 필요성만 강조를 강조한다. 정의는 하나 뿐이란 극명한 진리를 부정함으로 구성된 집단이 분리되고 상충하며 그 결과는 이웃을 파괴 혹은 인명을 살상하게되며 심지어 전쟁을 불사한다는 것 또한 이 세상 현실이다. 그 극명한 모델이 인류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하며 이미 사람들은 종교 신념에서 분리된 무리들이 상충하므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십자군 전쟁이며 그렇게 진화한 전쟁은 지금도 중동아시아를 거점으로 지구촌 각지에서 테러로 이어지면서 그치지 않는 사례를 들추어 이는 분열의 결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1802년 경, 미국에서 자생한 기독교의 두 종파가 있는데 그 하나는 동부에 거점을 도고 발전한 유나이티드 크리스천 처지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중부에서 자생한 크리스천 처치라고 하며“(그리스도의 제자,Disciples of Christ)라고 표시하는 교단이다. 이 두 교단 지도자들은 Tennessee 모처에서 만나 오랜 시간 토론을 통해 믿음의 본질이 하나란 결론을 내린다. 본질이 하나란 두루뭉실한 이 말이 신앙의 바탕이신 하느님도 하나요 추구의 본질 평화도 하나란 결론이었다. 신앙의 세계에서 하나뿐인 본질의 정의를 회복하면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화합 되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음으로 그 후 두 교단은 이름이 서로 달라도 추구하는 이념은 하나란 것을 행동하므로 선교와 교육을 공유하며 미국에서 종파 통합의 기치를 함께 들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믿음의 본질은 하나여야 하고 지엽적인 생각은 자유를 존중하자”란 표어로 20세기 말 미국에 존재하는 모든 종파, 카톨릭을 포함 20개 이상의 종파고 통일한다는 협약을 체결하게 된다. 나는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을 금새 일어났든 몇 가지 사건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긴 서론을 늘어놓았음을 고백한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의 본질이 하나라면 종교행위를 집 전하는 행위가 차별되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다. 어떤 형태(각기 다른 종파)로 그리스도를 믿든 신앙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은 신도는 하느님의 은혜에 동참할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 중 성찬이 그렇다. 허나 카톨릭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성경 말씀에는 “이 예를 행하여 나를 기억” 혹은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누가 그 예식을 집 전하며 차별할 권리를 부여받았나 하는 의문이다.

둘째 동포사회의 화합은 양보를 받아 낼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오직 외길 토론뿐이란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