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환자와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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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박사(횃불재단 트리니티 목회학 박사 프로그램 담당)

교회란 어떤 의미에서는 병원과도 같다. 신자는 환자다. 신자는 자신이 영적 환자라는 사실을 알고, 고침 받기 원하며, 또한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사를 안다. 불신자도 역시 환자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영적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따라서 고침 받기 원하지 않으며,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사에 관해 관심도 없다. 모든 사람은 다 환자다.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다 환자다.

우리는 모두 아프다. 육체적 그리고 영적으로 아프다. 먼저, 영적으로 아프다. 증상이 따른다. (1)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2)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3)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지 않는다. (4)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렇게 인간은 영적으로 아프다.

육체가 아프다. 인간은 육체적으로도 환자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 비록 지금 당장 병원에 가지 않고, 당장 특별히 아프지 않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은 육체적 환자다. 우리의 육체는 천천히 죽어간다. 세포는 점점 더 퇴화한다. 무덤을 만난다. 죽음은 절대로 아름답지 않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거나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죽음은 비정상적 현상이다.

사람은 원래 완전하게 창조되었다. 원래 죽지 않도록 창조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영생 대신에 죽음을 선택했다. 바로 에덴동산에서 그렇게 했다. 그래서 인간은 아프다. 영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환자다. 인간에게는 이 질병을 고칠 의사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병을 치료할 위대한 의사를 보내주리라고 약속했다.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사 35:5-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사 53:4). 이 예언은 신약에서 성취된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 4:23).

예수님은 가르치고, 설교하고, 병 고치는 사역을 하셨다. 가르치는 사역과 설교는 병자의 영적 및 정신적 질병을 고친다. 또한 예수님은 육체의 병을 고쳤다. 인간을 창조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따라서 예수님은 우리 육체의 모든 것에 관하여 아신다. 그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 보다도 우리에 관하여 훨씬 더 많이 아신다. 그 창조자가 자기가 만든 자기 피조물을 치료한다.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진다. 그는 위대한 의사다.

게다가 그는 우리의 질고만 고치지 않고, 가난한 인간의 병원비마저 해결한다. 십자가에게 죽으심으로 인간을 대신해서 치료비를 지급하셨다. 그 후 예수님은 부활하고 하늘로 승천하셨다. 이제 예수님이 하셨던 사역을 그의 제자들이 행했다. 베드로와 요한과 바울이 예수님을 따라서 말씀을 가르쳤고 전파했으며 병자를 고쳤다. 그리고 그들도 죽었다.

이제 이 사역을 교회가 계승한다. 따라서 교회는 마치 병원과 같다. 교회는 환자로 가득 찬다. 환자는 고침을 받기 위해 교회로 간다. 교회는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료 한다. 말씀은 마치 약과 같다. 구약과 신약, 이 약을 먹으면 영적 병이 낫는다. 하나님 말씀에는 힘이 있다. 힘의 원천이 있다. 지혜의 근본이 있다. 진실한 사랑 이야기가 있다. 생명이 있다. 진리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