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3.1 운동과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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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

섬나라 일본은 개인의 생존과 종족간의 공존을 위하여 강인한 훈련과 협력을 삶의 바탕으로 외부를 향해 침략과 약탈을 삶의 수단으로 하였다. 힘에 밀려 서구에 문을 열었지만 일본은 근대 과학 기술을 받아드리고 개발하여 명치유신으로 힘을 기르면서 섬의 한계를 넘어 대륙 정복의 야욕을 노골화하였다. 힘의 대결 법칙을 배운 일본의 눈에 조선은 쇄국과 당쟁의 약소국으로 대륙의 관문이었다. 일본군함 운요호의 강화도 침입과 군함을 앞세운 개방 요구에 맞설 수 없어 조선은 강화도 조약 곧 병자 수호조약을 체결하고(1876), 임오군란, 청일전쟁, 민비살해, 노일전쟁을 거치며 1905년 을사보호조약, 1910년 합방으로 나라를 굴욕적으로 강탈당하다. 일본은 조선 국호와 국권을 폐지하고 식민 무단정책으로 인권과 문화를 말살하고 토지와 문화재, 자원을 찬탈하며 동화 개화라는 이름으로 강도정치를 하다. 미국 사상가 라인홀드 니이버의 말대로 작은 나라 한국은 그 역사상 국호를 지켜온 열국 중 기적이던 것이 일본으로 깨어진 것이다. 원수를 혐오하며 벗어나고 싶으나 힘이 없어 한탄이라 죽음 같은 노예의 삶을 언제까지 살 것인가? 감시의 공포와 곤욕의 고통이 매일의 삶이나 한계점은 있다.

속에 있던 저항과 자유의 소리가 밖으로 나타날 때가 왔다.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 단체가 생기고 미국에서는 이승만을 중심으로 일차대전후 파리 강화회의에 조선 독립 청원을 하려던 것이 일본개입으로 무산되었으나 동경 유학생 500명은 미국 윌슨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에 힘 입어 1919년 2월 8일 동경 조선YMCM (기독교 청년운동) 회관에 모여 이광수가 기초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거리 행진을 하다. 이를 목격한 선우 혁은 귀국하여 평양 선천 정주 등의 교회 지도자와 접촉하고 천도교와 연계하여 독립 선언을 준비하다. 최남선은 정의 평등 자유 무저항의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33인을 대표자로 (기독교16 천도교 15 불교 2)하여 1919년 3월 1일 서울 태화관과 탑골공원, 전국 9개 지역에서 독립을 선언함으로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때 서울 이외의 8개 지역은 모두 교회지도자가 중심이 되었다.  2개월여 독립운동이 전국에 확산되자 일본 경찰은 비폭력 만세운동에 발포 사살 체포 투옥 방화등 폭력으로 진압하고 교회 모임을 금지하다. 3월3일 평남 강서교회는 무저항을 강조하는 글을 배부하는데 이날 장날이라 모인 자들을 학살, 체포하고 4월 15일은 수원 제암리 교회 교인을 교회에 모아 불을 지르고 피하여 나오는 자를 총과 칼로 모두 사살하는 일을 하다. 독립운동 1200여회에 참가 인원 200만, 사망 750, 구속 46천, 부상16천, 가옥 719, 교회당 47 파괴였다. 1919년 10월 장로교 총회 보고에는 장로교인 중 수감자 1642, 석방 2162, 사망 47, 예배당 파괴 12였고 감리교는 연회를 감옥에서 해야겠다 할 정도가 되었다. 피해자는 기독교 22% 천도교 15% 무종교가 61% 기타로 당시 조선인구 2천만에 기독교인 20만이나 천도교100만을 능가하여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어떻게 소수의 기독교가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주도하며 참여하게 되었나?

1)기독교인은 무엇보다 성경에 나오는 모세 다니엘 에스더 같은 신앙인물이 모두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여 헌신하였음을 보고 배우다. 나라와 민족 없이 자기가 없음을 알다. 2)스스로는 힘이 없고 약하지만 능하고 강한 하나님을 믿으면서 믿음과 소망을 가지다. 아말렉, 앗수르 등의 침략에서 나라를 지키는 것이나 에집트나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는 것이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인 것을 보면서 믿음을 기르다. 3)기독교 핵심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며 눌린 자,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것이라 인권존중, 해방과 자유는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알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바라고 행동하다. 독립운동은 총회의 결의가 아니라 개인적인 믿음의 결단으로 참가하고 헌신하였다. 4)기독교의 전국적인 조직은 독립선언서 배포와 운동확산을 용이하게 하고 세계적인 연결을 통해 일본의 만행과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게 되다. 5)선교부와 교회가 설립한 300 이상의 남여 기독교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며 믿음과 생활의 일치를 강조하고 야학과 병원 고아원 모자원 등의 사회 봉사 사역으로 기독교는 국민의 신뢰를 얻었으며 국민 1% 미만의 기독교지만 국민은 교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따랐다. 6)선교사는 다양하여 친일파 중립파가 있었지만 대개는 독립운동 지도자를 숨기고 보호하며 본국 선교부와 친지, 신문 등에 현실을 그대로 알림으로 독립 운동 정당성에 큰 힘을 싣고 세계의 협력을 구하였다.

독립운동으로 독립이 바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포악이 더욱 지속되다. 일본은 중국과 월남 등 많은 나라를 침략, 전쟁하며 드디어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자 미국이 반격하여 원자탄을 투하함으로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하다. 조선은 자기 힘이 아니라 주어진 은총으로 36년 일본압정에서 해방되어 염원하던 자유를 갖게 되었으나 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되고 오늘에 이른다.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으면서 한국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운 기적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평화와 자유를  찾고 있기에 이를 위해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북한의 김정은이 하노이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과연 그들이 그것을 참으로 이룰 수 있을까? 자유의 나라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진정 해방과 자유를 누리고 있나? 해방과 자유는 어디서 오며 어떻게 해야 그것을 나의 것, 너의 것으로 만들어 함께 누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