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이야기 38] 제임스 게일(James Scarth G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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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문 목사(시카고나눔교회 담임)

 

제임스 게일 (James Scarth Gale) 선교사는 1863년에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에서 6남매중 다섯째로 출생했다. 1888년 토론토대학교를 졸업 후, 토론토대학교 YMCA의 지원으로 조선 선교사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에서 캐나다로 이민해 온 농장 경영주였으며 장로교회 장로였다. 그가 선교사로 결심하게 된 사건은 1886년 매사추세츠주 마운트 허먼에서 미국과 캐나다 87개 대학, 251명의 학생들이 모여 말씀 집회가 있었는데 집회를 인도했던 강사가 시카고 YMCA 지도자였던 무디(D. L. Moody)였다. 당시 그들이 외친 구호는 “모두 다 가자, 모두에게로”(All Should Go and go to all)였다. 게일은 1886년 무디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선교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는 토론토대학을 졸업후 대학 기독청년회(YMCA)에 자원하여 선교사로 파송을 받게된다.1888년 10월 18일 캐나다 토론토를 출발하여 12월 15일 부산에 도착했다가 다시 북상, 제물포에 상륙하게 된다. 육로로 서울로 오는 길에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발진티푸스, 천연두)으로 죽은 시체들이 길거리에 내버려져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서울에 도착하여 12월 23일 주일 오후 2시 언더우드 집에서 주일예배에 참석하게 되는데 이때 그의 나이 25세였다. 이듬해 3월에 황해도 해주를 거쳐 소래교회에 가서 몇 달을 지내면서 또는 전국을 여러 번 순회하면서 한국을 익히게 된다.그러나 그의 파송단체가 재정난으로 게일의 선교비를 계속 지원할 수 없게 되면서 그의 친구 의사 헤론과마펫의 주선으로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로 적을 옮겼다.그후 1897년 5월 13일, 인디아나 주 뉴 알바니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 북장로교회 목사가 되었다.

그의 주된 사역이 전도와 성서를 한글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마태복음서, 에베소서등 신약성서 중 일부를 번역했다. 1897년, 한국 최초의 <한영 사전>을 간행하였으며 <신·구약 성서>와 <천로 역정>을 한국어로 발간하였다. 한국인의 교육을 위해 ‘교육 협회’를 창립하였다. 또 <춘향전><구운몽> 등을 번역하여 한국의 언어·풍습 등을 세계에 널리 알렸으며, 영국의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한글로 번역하여 복음을 전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이렇게 그는 다재다능한 선교사로 찬송가 개편, 기독교 교육, 기독 청년운동, 문서선교, 신학교육, 목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특히 1900년에 연동교회 1대 담임목사로 27년을 시무하면서 지식인들과의 활발한 접촉을 갖고 많은 지성인들을 교회로 오게 했다. 또 당시 양반들이 모인 교회에 천민들 역시 발을 들여놓게 한 장본인으로, 출신과 신분의 장벽이 없는 교회의 전통을 마련했다.

그때 게일선교사를 적극적으로 도운자가 천민 고찬익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천한 신분을 비관하여 젊음을 노름판에서 허랑방탕하게 지내며 방랑생활을 하던 중 원산에서 게일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후 연동 교회의 초대장로로 장립하고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한후 한국 장로교 최초의 목사 7인중 한분으로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다. 연동 교회는 연동 소학교(전신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세워 민족의 많은 일꾼들을 배출 하였다. 한국선교의 불길을 지핀 게일선교사는 한국 복음화는 물론이고 교육, 성경번역, 찬송가 개편에 초석을 다지는데 중요 역할을 했던 열정과 헌신은 우리 민족에게 큰 귀감이 될것이다.(참고: 한국교회사, 기독교방송CBS 다큐멘터리,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