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요리칼럼] 서정아의 건강밥상 “늙은호박 보리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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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요리 연구가/시카고)

 

하루는 엄마를 따라 이웃집에 놀러갔다. 같이 놀 친구가 없는 집인데다 이전에도 몇 번 가보아 새로울 것 없는 곳이었다. 그저 엄마 동무 해주러 따라 간 것이라 심드렁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다 늦은 오후였는데 아주머니는 노오란 국 한 그릇을 내 놓으셨다. 붉은빛의 둥그런 밥상에 올려진 노란색 국이었다. 노랗다 못해 주홍빛이 담긴 신기한 국을 보며 나는 조그만 창으로 들어온 늦은 햇살이 밥상에 내려 앉아서 이리 노랗게 보이는가 생각했다. 엄마는 조그만 종지에 담긴 소금을 노란국에 넣고는 휘휘 저은 후 연실 ‘시원하네요. 정말 시원해요’ 하시면서 드셨다.

 

그 노란국은 한 철을 기다리고 기다려 얻은 귀한 호박에 물을 부어 끓여 내신 늙은호박국이었다. 멀뚱히 앉아 있는 내가 아주머니께 미안하셨는지 엄마가 상 밑으로 나를 툭툭 친다. 엄마의 나중 잔소리가 겁이나 나는 소금을 조금 넣고 용기 내어 한 입 먹어 보았다. 분명히 국이라고 하셨는데 달큰했다. ‘설탕을 넣으셨나?’ 하고 생각했다. 큼직한 덩어리들을 숟가락으로 뚝뚝 잘라가며 국물과 함께 후루룩 후루룩 먹는 엄마를 보며 ‘아 이게 시원한 맛이구나’ 배우며 나도 숟가락으로 뚝뚝 잘라 따라 먹다 보니 어느새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얼마나 기특해 하시던지.

 

늙은 호박과 보리는 옛날 배고프고 어렸웠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지긋지긋했던 가난을 상징하는 식재료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변비나 비만 성인병 등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가장 바람직한 식재료들 중 하나로 인정 받고 있다. 늙은 호박은 몸은 따뜻하게 하고 위를 편안하게 해주는 대표적인 식재료로 꼽히며 보리는 칼슘과 인, 아연, 엽산, 비타민 B2등 성장에 도움을 주는 영양성분과 빈혈에 도움을 주는 철분이  풍부한 식재료이다.

 

슬로우쿠커에 노오란 늙은 호박 한 덩어리를 뚝뚝 잘라 넣고 통보리 반 컵을 넣는다. 넉넉하게 물을 붓고 현미찹쌀가루를 두어큰술 넣고는 밀렸던 일 해야하는 일들을 한다. 한나절이 지나면 따끈따끈하고 부드러운 죽이 뚝딱 완성 되어 있다. 일단 만들어 두면 바쁜 아침에도 한 그릇, 출출함이 느껴지는 오후에도 한 그릇, 가뿐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위한 가벼운 저녁에도 한 그릇 쉽게 먹을 수 있다. 어느 때에나 즐길 수 있는 부드럽고 맛난 건강밥상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슬로우쿠커가 없다면 냄비에 늙은호박과 보리를 넣고 불에 올려 끓기를 기다렸다가 불을 줄이고 찹쌀가루를 풀고 간을 맞추어 내면 된다.

늙은호박에 보리를 넣은 죽. 이제는 더이상 배곯을 일 없는 나에게는 따뜻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음식이다. 햇살이 좋은 오늘 오후에는 노오란 늙은호박에 보리 한 움큼 넣은 늙은호박 보리죽을 엄마의 옛날 이야기와 함께 딸에게 만들어 주어야겠다.

 

늙은호박 보리죽

 

재료

늙은 호박 2파운드, 통보리 반 컵, 물 4-5컵, 현미찹쌀가루 두 큰술, 소금

 

만드는 방법
1. 늙은 호박은 껍질을 벗기고 씨를 제하고 깍둑썰기한다.

  1. 보리는 깨끗이 씻는다.
  2. 슬로우쿠커에 늙은호박과 보리, 찹쌀가루, 물을 넣고 강불에 4시간 둔다.
  3. 소금으로 간하고 낸다.

 

서정아의 힐링건강요리교실

문의ssyj20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