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부흥’ 노린 사우디·러 주도…“연말 95불(국제유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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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 기습 감산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국제유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산유국들의 ‘깜짝 감산’을 주도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커진 것은 물론 미국과 사우디 간의 긴장이 크게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장중 8%나 급등했다.

아울러 예상하지 못한 유가 변수로 인해 다음 달 통화정책 방향을 설계해야 하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심도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백악관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산유국들의) 감산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2일(현지 시간) 외신과 에너지 컨설턴트 등에 따르면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산유국들이 일일 116만 배럴의 추가 감산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달러 이상 오른 90달러 안팎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통신은 “금융위기 우려로 지난달 배럴당 70달러까지 떨어지며 15개월 내 최저치를 기록했던 유가가 다시 반등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원유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선물 가격 전망치를 올해 말 배럴당 95달러, 내년 말 배럴당 100달러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이날 OPEC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가 발표한 자발적인 감산 규모는 116만 배럴이다. 하지만 여기에 기존에 추진하던 250만 배럴의 감산을 합하면 총 감산량은 366만 배럴에 달한다. 이는 일일 전 세계 수요의 3.7%에 해당한다. 물론 실제 감산량이 이보다 적을 수 있으나 이번 감산을 시장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충격이 컸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생산량 변경 움직임이 없던 산유국들은 이날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등에 따른 경기 침체 가능성을 거론하며 예방적 차원에서 감산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이번 감산 발표는 3일 예정된 OPEC+ 장관급 감시위원회(JMMC)를 앞두고 휴일에 불시에 이뤄졌다. 형식상 OPEC 차원의 공식 발표 없이 각 나라가 개별적으로 감산에 나선 모양새다. JMMC는 3일 화상회의 후 “자발적인 추가 생산량 조정은 원유 시장 안정에 기여하기 위한 예방 조치”라고 지지 입장을 내며 감산 계획을 엄격히 준수하라고 회원국들에 권고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발표를 주도한 것은 사우디와 러시아”라고 전했다. 실제 감산 규모를 봐도 사우디와 러시아가 각각 50만 배럴씩 감산하고 나머지 산유국들이 이를 따르는 형태다.

결국 이번 감산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경제 개혁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유가를 높게 유지해야 하는 사우디와 원유 수익이 절실한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해 사우디에 원유 증산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으나 사우디는 되레 감산을 주도하며 미국과의 갈등을 키우고 있다. RBC캐피털마켓의 글로벌 원자재 전략 책임자인 헬리마 크로프트는 “사우디가 그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원유 생산량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명확한 징후”라고 말했다.

산유국들의 감산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차 고조되며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도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미국 지역은행의 잇따른 파산과 유럽 대형 은행들의 유동성 위기 등 금리 인상에 따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유가 상승이 또다시 금리 인상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감산으로 원유 가격이 상승하면서 물가 압력을 조절하기 위한 연준 등의 과제가 더욱 복잡해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날 외환시장에서는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였고 국채금리 역시 상승했다. 시장조사 업체인 라자드의 수석 시장 전략가인 로널드 템플은 “이번 감산은 인플레이션 요정이 병 속에 봉인돼 있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며 “각국 중앙은행이 다시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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