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풀이] 指鹿爲馬(지록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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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두표(시카고 문인회 회원)

‘사슴(鹿)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우김.’이라는 뜻으로, 즉 사실이 아닌 이야기로 윗사람을 속여 권세(權勢)를 누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말이 생겨난 유래를 알아보겠습니다. 옛날 중국의 진(秦)나라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B.C403- 221)를 끝내고 천하통일(B.C 221)을 하였는데 그 때 왕이 정(政)인데, 최초로 ‘진(秦)을 건국한 사람으로 13세에 왕위에 오른 후 22세 때 당시 섭정(攝政)을 하고 있던 여불위(呂不韋)를 몰아내고 친정체제(親政體制)를 구축(構築)하면서 자신을 전설상의 황재인 삼황오재(三皇五宰)에 비유, 여기서 황(皇)과 재(宰)를 따오고, 진나라를 시작한다는 뜻으로 진시황재(秦始皇宰)라 칭하며, 차례대로 2세, 3세 등으로 하여 이를 천만세 까지 이어나가도록 하자며, 진(秦)나라가 영원히 존재할 것으로 확신하며 호언장담(豪言壯談)하였으나, 3세 자영(子嬰)을 마지막으로 천하통일을 한 B.C221- 206년 까지 16년 만에 한(漢)나라 유방(劉邦)에게 멸망(滅亡)당했습니다. 진시황이 왕위에 오른 B.C 246- 206년 까지 모두 합해도 41년 만에 멸망당한 것입니다. 진시황 에게는 첫째아들 부소(扶蘇)와 작은아들 호해(胡亥)가 있었는데, 큰아들이 황제의 폭정(暴政), 만리장성과 아방궁(阿房宮)을 짓는 등 부왕의 정책에 여러 번 반대한 적이 있어 멀리 북쪽의 상군지방으로 쫓겨나 변경지방의 군대를 감독하고 있었고, 작은아들인 호해(胡亥)는 환관(宦官=내시)인 조고(趙高)가 맡아 가르치고 있었고, 또한 황제의 곁에 붙어 있었다. 당시의 승상(丞相=정승)은 이사(李斯)였는데, 권력을 잡기위해 황제의 죽음을 이사에게도 숨기고 황제의 옥새도 자기가 움켜쥐고 있었다. 황제가 숨을 거두기전 장자인 부소(扶蘇)에게 편지를 쓰기를 ‘군대는 몽염(蒙恬;대장군)에게 맡기고 함양(咸陽)으로 돌아와 짐(朕)의 유해(遺骸)를 맞이하고 장례를 거행하라.’ 그러나 편지는 조고가 가로채고 가짜편지를 쓰기를 ‘부소는 자식으로 불효한 자다. 이에 하사한 칼로 자결하라. 또한 장군 몽염도 그의 잘못을 고쳐주지 못했으니 불충한 신하로서 또한 자결을 명한다.’ 이렇게 쓰고 거기다 옥새를 찍어 부소에게 보냈다. 그리고는 걸림돌인 이사를 모반(謀反)을 꾀했다는 억지 죄명을 씌어 자백을 하도록 하고는 3대를 모두 죽였다. 실권을 장악한 조고는 호해(胡亥)를 2세 황재로 즉위시키고는 ‘무엇보다도 법을 엄격히 하고 처벌을 가혹하게 해야 합니다. 죄를 지은 자는 일가친척이라도 죽여 없애고 시황재 때 임명한 옛 신하들은 모두 파면하고 폐하께서 신임하는 사람만을 가까이 하십시오.’이렇게 하여 승상인 이사도 죽고 나자 황제는 조고를 승상에 임명하고 국사와 관련된 모든 일은 조고의 손에 의해 결정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조고는 황제에게 사슴을 한 마리 바쳤다. 그리고는 ‘폐하! 제가 좋은 말 한 마리를 구했습니다.’황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것은 사슴인데…’ 하자 조고의 권세에 눌린 신하들은 일제히 ‘폐하! 그것은 말입니다.’ 이로부터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습니다. 황제는 자기가 정신이상이 아닌가? 스스로 의심이 들었다. 결국은 자결을 하자 자영(子嬰)이 3세 황제가 되어 병을 핑계로 조고를 궁으로 불러들인 후 환관인 한담을 시켜 조고를 찔러 죽인다. 그러나 이미 국운이 다해 한나라 유방에게 멸망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