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풀이] 朝三暮四(조삼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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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두표(시카고 문인회 회원)

아침에는 3개, 저녁에 4개라는 뜻으로, 우리는 일상에서 자주 듣고,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말은 결국 ‘눈앞에 보이는 차이만 알고, 결과는 같다는 것을 모르는 것.’을 비유(比喩)로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B.C 403- 221) 때 송(宋)나라에 <저공>(低公)이라는 사람이 원숭이(猿)를 길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숭이를 너무 많이 기르는 통에 먹이가 부족해지자, 어쩌면 원숭이를 시장에다 내다 팔거나, 남에게 넘겨야 할지도 모르는 처지가 되자, 그동안 정(情)들여서 키운 원숭이 들인데 그냥 팔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그는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먹이를 조금 줄이기로 했는데, 어떻게 줄이기로 했냐면, 먹이(도토리)를 ‘아침엔 3개, 저녁엔 4개’를 준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원숭이들이 마구 화를 내며 날뛰는 바람에, 얼른 말을 바꾸어 ‘그럼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 고 하였더니 모두들 흡족해 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총 합계는 7개로 똑 같은데, 당장 눈앞에 닥치는 현실에는 변화가 없으니 나중에 일어날 손해에는 둔감(鈍感)하다는 것으로, 한마디로 말하면 ‘간사(奸詐)한 꾀로 남을 속이다.’ 라는 뜻이고 원숭이를 빗대어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유(比喩)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나오는 것으로, 제물론이란 장자가 주장하는 자연의 길은 무한하다. 걸림도 없고 상대성도 없고 차별도 없다. 그러므로 자연의 길은 한결 같다. 그래서 제물론은 물화(物化)라고 하였다. 즉 (1)물건의 변화 (2)천명(天命)을 마치고 죽는 일로, 모양을 바꾸었을 뿐, 원래 있었던 그대로 다 같다는 뜻입니다. <장자>는 철학우화(哲學寓話)를 통하여 다른 사물에 칭탁(稱託; 어떠하다고 핑계를 댐.)삼아 교훈(敎訓)의 뜻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이야기를 쓴 사람으로, 결국 삶이란 웃음과 울음이 겹치면서 돌아가는 수레바퀴와 같다는 생각을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또는 동물)들이 말해줍니다. 원문을 소개하면, 朝三而暮四, 衆狙皆怒, 然則朝四而暮三, 衆狙皆悅.(조삼이모사 하니, 중저개노 하거늘, 연즉조사모삼 하니, 중저개열 하더라.) 즉 <저공>은 자기만의 관점(觀點)을 원숭이에게 강요하지 않고 원숭이의 관점을 받아들여, 자신과 원숭이 사이의 갈등(葛藤)을 현명(賢明)하게 조율(調律)하여, 자연적인 가지런함을 실현한 현명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원숭이들을 딱히 멍청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공>이 모든 것에 초탈(超脫)한 신선(神仙)처럼 묘사(描寫)되지도 않았는데, 현실에서 남과의 소통(疏通)에서 남을 어리석다거나 억지를 부린다고 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처리를 해준다면 본인의 손해가 없으면서도 상대도 만족하게 해주는 일을 원만히 처리하는 것이 바로 소통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원숭이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원숭이를 빌려서 인간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으로 인간의 감정(感情)은 마음을 변덕스럽게 하고, 이성(理性)은 그러한 변덕을 합리화 하려고 한다.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그럴듯한 꼬리를 달아서 이것은 이래서 좋고, 저것은 저래서 나쁘다고 시치미를 땐다. 인간의 욕심에는 입(口)만 있지, 배설기(肛門)가 없습니다. 우선 눈앞에 이익에만 눈이 멀어 뱃속에다 넣을 줄만 알고 배설(排泄)할 줄은 몰라 탈이 납니다. 조삼모사는 바로 이를 빗대는 우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