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풀이] 興淸亡淸(흥청망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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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두표(시카고 문인회 회원)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1)흥청(興淸)거리며 마음껏 즐기는 모양. (2)돈이나 물건 등을 함부로 쓰는 모양. 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조선시대(朝鮮時代) 경복궁(景福宮)의 ‘경회루’(慶會樓)는 나라의 경사(慶事)가 있을 때 연회(宴會)를 베풀던 곳으로, 경회(慶會)라는 뜻도 ‘경사스러운 연회’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현재 국보(國寶) 224호로 지정) 훗날 <연산군>(燕山君)(1476-1506년 31세로 병사) 때에 와서는 이곳을 미희(美姬)들과 더불어 즐기며 노는 놀이터 역할을 했다는 일화(逸話)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연산군> 말기에 조선의 국악(國樂)과 춤을 관장(管掌)하던 ‘장악원’(掌樂院)을 대신하여 ‘연방원’(聯芳院)을 설치하고, 전국의 아름다운 여성들을 모아 ‘관기’(官妓)를 삼아 춤과 노래를 가르쳤다고 하는데, 그는 채홍준사(採紅駿使)들을 전국팔도에 보내어 미녀(美女)들을 징발(徵發)했으며, 그 수효가 만여 명에 이르렀고, 그들의 급사수종(給使隨從)과 방비(房婢)라 일컫는 자도 수없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들을 7원(七院) 3각(三閣)을 설치하여 거처하게 했는데, 이들을 등급을 매겨, 운평(運平), 계평(繼平), 채홍(採紅), 속홍(續紅), 부화(赴和), 흡려(洽黎) 따위의 호칭(呼稱)이 있었는데, 이중에서도 따로 뽑은 자를 ‘흥청악’(興淸樂)이라하고, 50여명을 선발하여 그중에 20여명을 ‘흥청’(興淸)이라하고 그 다음을 ‘운평’(運平)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때 <연산군>은 이곳 경회루 연못에 배를 띄우고 미모(美貌)가 출중한 ‘흥청’이와 더불어 주지육림(酒池肉林)의 놀이판을 벌였다고 해서, <연산군>이 ‘흥청(興淸)과 놀다가 망(亡)했다는 뜻.’으로 흥청망청(興淸亡淸)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는 이뿐만이 아니라 중신(重臣)들의 부인(婦人)들을 궁궐(宮闕)로 불러 잔치를 베풀고는 그중에 점을 찍어 마구 농락을 했으며, 그의 큰어머니가 되는 월산대군(月山大君;1454-1488년 35세에 죽음. 연산군의父인, 성종(成宗)의 친형,) 의 2번째 부인인 승평부부인 박씨(朴氏)를 능욕하는 짓을 하였고, 성종(成宗)의 후궁들이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가 여승(女僧)이 되었는데, 이를 강제로 끌고 와 머리를 기르게 하고 고기를 먹게 하고는 그중 아름다운 후궁을 취하기도 하는 짓을 해 용서받을 수 없는 패륜(悖倫)을 서슴없이 저지르며, 임금은 무치(無恥)라 부끄러움이 없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후세의 사람들은 난폭한 행동이나 거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두고 ‘에이 망(亡)할 놈의 자식!’ 하고 욕을 했는데 이를 지켜본 할머니는 그렇게 욕을 하면 안 된다며,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며 행주치마로 훌쩍거리는 콧물을 닦아주고 ‘흥(興)해라! 흥(興)! 했다는 것입니다. 씁쓸하지만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연산군>은 1494년 19세의 왕위에 올라 11년 9개월 만인 1506년 9월 2일에 박원종(朴元宗), 성희안(成希顔) 등이 군사를 일으켜 성종(成宗)의 2남인 진성대군(晋成大君)을 옹립했는데, 이것이 중종반정(中宗反正)이고 연산군의 동생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 패륜을 저지르던 폭군(暴君)은 결국 병사(病死)하고 다음 임금으로 중종(中宗;1488- 1544 57세, 재위 1506-1544 37년간)이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절제(節制)없이 흥청거리다가는 망하는 법이라는 교훈을 주는 고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