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아닌 판사가 끝낸 마스크 의무화···정치화된 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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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써야되나 말아야 되나 미국 혼란<로이터>

법원 전격 제동에 보건계 “법으로 정할 사안 아냐···CDC 권위 무너져”
연방 대법원 판사 정치 성향에 마스크 의무화 ‘운명’ 결정될 판

대중교통에서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방침 변경을 둘러싸고 미국이 혼란에 빠졌다.

마스크 의무화를 끝낸 곳이 방역 정책을 책임지는 보건 당국이 아닌 법원이어서다.

사안의 발단은 18일 플로리다 연방법원의 기습적인 판결이었다.

플로리다주 연방법원의 캐슬린 킴벌 미젤 판사는 18일 버스, 지하철, 여객기 등 대중교통 수단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권고를 무효로 판정했다.

마스크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섞인 침방울을 막겠지만 소독 효과가 없어 공중위생이 증진된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미첼 판사의 판단으로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가장 효과적 수단으로 보건 전문가들이 지목하는 마스크의 ‘위력’이 한 번에 무효가 됐다.

전염병이나 바이러스 전문가라고 볼 수 없는 판사가 방역 정책을 뒤집으면서 정치적 이유로 이번 판결이 내려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판사가 과학에 근거하지 않고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방역규제에 반감을 지닌 보수단체 소송에 화답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내내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방역 정책에 기준을 제시했던 최고의 과학자 집단인 CDC는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 법무부와 CDC는 “이 조치(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공중보건에 계속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리면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법원 결정을 둘러싼 혼란은 사법부와 행정부의 갈등을 넘어 행정부 내에서도 일부 목격된다.

미국 교통안전청(TSA)은 법원 결정이 나오자 즉각 CDC 권고를 무효화하고 대중교통 수단에서 마스크 착용을 개인 선택에 맡겼다.

이에 따라 주요 항공사, 미국 전역에서 열차 서비스를 제공하는 암트랙, 차량공유업체 우버와 리프트, 주요 국제공항 등이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해제하기로 했다.

특히 2년 넘게 팬데믹으로 영업에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는 일제히 환호했다.

그 와중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은 CDC를 옹호하며 교통당국의 결정과 다른 메시지를 전파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전용 공군기 에어포스원에서 마스크를 착용했고 백악관은 여전히 CDC 지침을 권한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연방 법원, 연방 정부기관의 엇박자 때문에 대중교통에서는 혼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항공사의 조종사를 대변하는 비행조종사연합의 데니스 타이저 대변인은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엄마, 아빠를 바라보는 아이가 된 것 같다”며 “승객도 혼란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 전문가는 법원의 이번 결정 때문에 방역의 접근법이 크게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의 리애나 웬 공중보건 교수는 “상명하달 방식으로 의무를 지우는 게 아니라 정부가 개인에게 가장 좋은 결정을 스스로 내리도록 위임하는 방식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웬 교수는 혼란스럽더라도 마스크 의무 해제를 마스크를 더는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감염 때 중증 환자가 될 위험이 큰 집단, 너무 어려서 백신을 접종하지 못한 집단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당부다.

바이든 행정부는 혼란을 없앨 선택지로 항소를 거론하면서도 패소 때 미칠 악영향 때문에 고심하는 형국이다.

항공기 승무원 노동조합인 항공승무원협회(AFA)는 연방 정부가 항소를 통해 불확실성과 혼란을 해소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더힐, 뉴욕타임스 등 언론은 보건당국의 권위가 패소 때 심하게 훼손될 우려가 있어 결단이 신중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조지타운대의 공중보건 전문가인 로런스 고스틴은 바이든 행정부가 딜레마에 몰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편으론 항소법원, 대법원까지 가서 CDC 권위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고 다른 한편으론 (항소 자제로) 판사 결정을 방치해 효과적인 보건정책을 펴는 데 보건당국이 소심하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항소가 이뤄지면 이번 사건은 미국 남동부를 관할하는 제11 연방항소법원이 심리하게 된다.

이 법원 판사의 대다수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적인 인사들로 전해진다.

상고심이 진행되는 연방 대법원도 대법관의 이념적 구도가 보수 6명, 진보 3명으로 기울어져 바이든 행정부에 불리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마스크를 의무로 써야 할지를 결정하면서 감염 차단 효과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기보다 판사의 정치 성향을 살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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