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뇌와 교육-Part X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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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임(교육학 박사)

사회의 어른들은 모두 자라나는 꿈나무들인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많다. 그런데 세상은 너무나 변화무쌍하며 매우 복잡하게 돌아간다. 이에 성인은 아이들이 각자의 잠재력을 마음껏 펼치고, 꿈을 이루도록 이끌어 줄 책임 또한 크다. 그러면 아이들이 저마다 소중한 삶에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워 만개하고 번창할 수 있도록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우선적으로 교육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 지덕체를 갖춘 전인으로서 자라는 것이다. 물론 전인은 단지 책의 내용을 머리로 암기해서 시험만 잘 보는 사람이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출세에만 눈이 어두운 사람도 결코 아니다. 그래서 집안의 어른이 먼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나아가 인류애를 보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특히, 남이 하면 한없이 신랄한 비판을 일삼고, 내가 하면 상관없다는 식의 행동을 삼가야 한다. 성인이 바른 본을 보이면, 아이가 따라하고 모방하며 배우게 된다.

21세기의 혁신적인 세상을 살려면, 아이들은 사회정서적으로 성숙하고, 개성과 자신감, 비판적 사고력,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즉, 아이들은 자신을 잘 알고, 당당하게 사회의 불의에 맞서 싸우고, 정의의 실현에 이바지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도록 우뚝 설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이 각자의 개성을 찾고, 지성을 쌓고, 정체성을 정립하고, 독립성을 갖고 살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여러 방법들이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강압을 버리고 사랑과 애정으로 돌보는 데에 중점을 두자. 사실상 이제는 윽박지르기나 위협 등이 아주 구태의연한 방식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자랄 때만해도 세상이 많이 닫혀 있었다. 그때는 부모나 교사가 소리지르고 화내면, 그저 숨죽이고 남몰래 울면서 따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정신없이 변하고 있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혹은 자식에게 생명을 주었다는 구실을 내세워 막연히 힘과 고집을 부리고, 말도 안 되게 권위를 내세울 수가 없게 되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어른의 말이라고 해서 그저 순응하고 단순히 복종하지 않는다. 따라서 훈육 방법도 열린 사회에 맞게 변해야 한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유익한 자극과 환경들에 노출되어 제대로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며 자라야, 공감능력(empathy)을 키우게 된다. 그리고 이는 자연적으로 이타심과 친사회적 행동(pro-social behavior)으로 이어진다. 반면에 잔정이 없고 폭력적이거나 정서가 메마른 어른들 속에서 자라면, 반감(antipathy)만 커지고 냉담한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이기심과 반사회적 행동(anti-social behavior)으로 이끈다. 만약에 부모 자식 간의 튼튼한 애정과 애착의 기반 없이, 매사에 아이를 나무라고, 벌을 주고, 잔소리만 하다 보면, 아이는 기가 죽고 마냥 움츠러들게 마련이다. 아이는 어느새 자신의 둥지를 틀고, 그 보호막 안에 꼭꼭 숨어버린다. 점점 개성을 살릴 용기를 잃어 가고, 꿈에 도전하기는커녕 온통 불만과 적개심만 키운다. 결국, 새로운 사회에 부합하며 잘 살아 보지도 못하고, 마냥 퇴보하는 길을 선택하기 쉽다.

누구나 되도록이면 아무 마찰이나 불찰 없이 아이를 지도하고 이끌기를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은 애착의 힘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를 존중하고, 정다운 접촉과 이해심을 통해서 애착을 굳건히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에게 필요한 지혜와 용기는 바로 부모와 어린 자녀 사이의 정서적으로 강한 결합에서 싹트고 피어난다.” 그래서 아이들이 성장기 동안 어른들의 사랑과 애정 속에서 자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따라서 자녀를 키울 때, 이성이나 논리만을 앞세워 매사에 따지고 고치려 들기보다는 자녀의 입장과 마음을 이해해주고 위로해주는 데에 보다 헌신해야 한다. 우리 모두 자녀양육의 핵심은 성인과 아이 간의 정서적 결합에 있다는 것만 기억하자. 한마디로 ‘다정다감’이다. 부모-자녀 간의 심리적 친밀감은 전인에게 필요한 풍부한 감정의 기반을 쌓는 아주 좋은 출발점이 된다. 훈육도 다양한 삶의 방식처럼 반드시 한가지만 옳다는 철칙에서 벗어나,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적응해 나가야 부모도 자녀도 행복한 법이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