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뇌와 교육-Part XV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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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임(교육학 박사)

인생사에는 해답이 없다. 그래서 너무나 힘들고 어려울 때면, 현자가 나타나 “너는 이렇게 하면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야!”라면서 환하게 길을 밝혀 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혹은 미래학자나 점쟁이의 말들에 아주 쉽게 현혹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 누구가 우리의 복잡하고 미묘한 삶을 명쾌히 풀어서 해결해 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태도로 ‘하늘아래, 태양아래 별거 없다!’면서 자포자기를 하고 마는 것은 바람직한 길이 아니다. 고통과 번뇌의 삶을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다며 매사에 마냥 투덜대거나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면, 결국 행복하고 즐거운 삶과는 한없이 멀어질 뿐이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는, 더 나아가 가족과 친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고 화목하게 지내려면, 무엇보다도 미래를 내다보는 넓고 깊은 식견과 여유롭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세상과 사물을 포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안목과 통찰력, 즉 혜견(慧見)은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저절로 갖게 되는 것이 아니다. 자고로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보다 사리에 밝으며 융통성 있고 관대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매사에 긍정적인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런 긍정적 자세가 몸에 배어 실천하려면, 하루아침에 의식적, 양심적으로 개과천선(改過遷善)할 수 없듯이, 많은 시간과 인내, 연습이 따라야 한다.
사실상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복잡한 세상에 던져진다. 갓 태어난 아기를 생각해보자. 자력으로 살아남기엔 참으로 역부족이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부모에게 매달리고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폭풍 같은 사춘기와 정열적인 청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서 독립적인 인간으로 자유로이(!) 우뚝 서야 한다. 하지만 삶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생사에는 너무나 많은 ‘잡음과 소음’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이에는 악의가 담긴 험담, 대입 실패, 부당해고, 허황된 욕심, 남에 대한 의심과 불만, 신에 대한 원망, 사랑하는 이와의 파혼, 반려동물과의 사별, 사기를 당하거나 도둑맞기 등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문제는 이들 부정적인 경험과 나쁜 기억, 분노의 감정들이 뇌 속 깊이 자리잡고는, 우리의 삶을 계속해서 괴롭히고 방해한다는 데에 있다. 또한 도저히 감당하기 버거운 엄청난 사건사고가 발생하거나 혹은 불의의 재난이 불현듯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오기도 한다.
그뿐인가? 짧지만 또 긴 인생의 여정에서 사람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허무감과 공허감에 시달린다. 아마도 인간의 저 깊은 마음 속에는 밑바닥이 뻥 뚫린 샘처럼 채워도, 채워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감정상자’가 있는 듯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처럼 내 마음의 항아리가 ‘졸졸졸’ 새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인생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은 논리적으로 반성하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기에, 또 ‘자유의지’가 있기에 당면한 문제들을 비관적으로 아니면 좀더 낙관적으로 해석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시작이 반이다. 의지만 있다면, 긍정적인 인생관을 실천하며 살 수 있다!
내가 학창시절 무척 좋아했던 영화 중에 1939년에 개봉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가 있다. 이 영화에서 스칼렛 오하라의 역을 맡은 아주 아름다운 여배우, 비비언 리는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라고 말한다. 그녀는 매우 슬픈 상황에서 이렇게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라는 담대한 마음가짐으로 당차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직도 강한 여운을 주는 이 마지막 대사가 어쩌면 한세상을 살면서 지친 내 마음의 샘을 잠시나마 가득 채우는 듯하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