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생각] “한국일보 신경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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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은 기자

기자로서 한인사회 각종 행사들을 취재 다니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고 글을 쓰는 게 좋아 옹골찬 꿈(?)을 품고 기자가 된지 이제 겨우 3개월 새내기 기자다. 하지만 벌써부터 취재 장소에서 불쾌함과 아쉬움을 느낀다.

최근 모 단체장 이·취임식에서 꽤나 불쾌한 일을 겪었다. “어이, 거기 노랑머리!” 참석자들의 단체사진을 찍으려던 상황에서 잠시 돌아선 나를 누군가가 불렀다. 참석자들은 모두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앉아 있었고 기자들만 맞은편에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기에 그 사람은 내가 기자임을 모를 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만찬과 음주를 겸했던 또 다른 행사에서는 술을 거하게 드신 참석자 한분이 사진을 찍던 나에게 “어이, 아가씨! 이쪽은 찍지마”라고 막말한 적도 있었다.

기자에게 노랑머리, 아가씨, 어이라고 부르다니. 몹시 기분이 상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가씨가 왜 기분이 나쁘냐며 예민하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 인권에 대해 조금만 깊게 생각해봐도 긴 세월 동안 아가씨라는 단어가 그저 ‘시집 갈 나이의 여자’나 ‘손아래 시누이’의 의미 외에 성매매업소나 영화, 노래, 드라마 등 각종 매체에서 어떤 식으로 낮춰 불러지며 소비되어 왔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취재를 하다 접한 인사들중 일부는 나와 방금 명함을 교환하고 인사를 나눠 내가 한국일보 취재기자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기자’라는 호칭에 인색하다.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에서의 호칭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직책과 이름을 모른다고 서로에게 함부로 어이, 아저씨, 아줌마라고 부르지 않듯이 뻔히 취재중인 기자임을 알면서도 ‘아가씨’나 ‘어이’라고 부르는 것은 절대 예의가 아니다.

내가 더욱 불쾌하고 안타까운 것은 ‘호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태도와 어투에서 내가 어린 여성이어서 무시하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행사장에서 서로를 ‘회장님’ 또는 ‘사장님’이라고 부르며 깍듯이 인사하던 사람들이, 또한 남자 기자들에게는 ‘000기자’, ‘기자님’이라고 불러주던 그들이 유독 쉽게 무시하고 낮춰 부를 수 있었던 사람은 여성이자, 어리고, 새내기 기자였던 나뿐이었던 것 같다.

내가 그들에게 예의를 차리며 대하는 이유는 내가 그들보다 못나서,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기 위함이다. 대단한 사람들인 것도 알겠고 한인사회 동포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도 알지만 요즘은 직업, 나이, 성별에 더 이상 귀천이 없는 시대다. 나이가 많아서, 남성이라서 누구에게든지 하대를 하거나 막말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다면 각성하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린다.

“나는 ‘아가씨, 어이’가 아니라 한국일보 신경은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