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권 파기 땐···“원정시술·약 밀거래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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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 연방 대법원 앞에서 여성단체들과 낙태 지지자들이“낙태는 자유다”라는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3일 연방 대법원은 낙태 지지와 반대론자들이 대치하며 시위를 벌였다. [로이터]

 50년 낙태권 보장 흔드는 ‘헌법적 지진’ 평가
주별로 낙태권 인정 달라져···“저소득층 가장 곤경”

연방 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는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실제 이 판례가 깨지면 미국 사회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를 놓고 우려 섞인 전망이 제기됐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일 ‘로 대 웨이드’로 불리는 낙태권 인정 판례를 파기하는 방안을 대법관 다수 의견으로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대법관 구성이 보수 우위로 바뀐 뒤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50년 가까이 유지돼 오던 낙태권 합헌 판례가 뒤바뀔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낙태할 수 있는 범국민적 권리를 개별 주(州)의 결정에 맡긴 채 없애버리는 ‘헌법적 지진’(constitutional earthquake)”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진보 성향 매체 뉴욕타임스(NYT)는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을 경우 ‘시대를 반세기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향후 미국 사회에서 일어날 상황을 전망했다.

우선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합법화한 낙태권이 연방 헌법의 보호에서 벗어나면 미국의 주별로 정치 성향에 따라 들쭉날쭉한 법이 시행될 것이라고 NYT는 내다봤다.

낙태가 절반 이상의 주에서는 합법적이겠지만 보수 성향이 강한 중서부와 남부의 여러 주에서는 그렇지 않게 될 것이며, 낙태에 대한 접근이 금지되거나 법률적 제한을 두는 주가 22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없었다면 미국 내 합법적인 낙태가 최소 14% 감소했을 거라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미들버리 칼리지 팀의 연구 결과도 함께 제시됐다.

이렇게 되면 주정부가 공화당 성향인 곳이 많은 중서부와 남부의 저소득층 여성 사이에서는 합법적 낙태가 크게 줄어들겠지만 일부 여성은 낙태가 합법인 민주당 성향의 주로 소위 ‘원정시술’을 갈 것이라고 NYT는 지적했다.

낙태가 금지되는 주에서 가장 곤경을 겪을 사람으로 취약계층 여성이 지목됐다. 원정시술마저 비용 부담 때문에 갈 수 없는 이들이다. 흑인이나 라틴계, 10대, 무보험자, 서류가 미비한 이민자 등을 NYT는 취약 여성으로 꼽았다.

특히 판례 파기 후의 미국 사회는 판례가 나오기 전의 시대상이 반영될 것으로 전망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전 미국에서는 4개 주에서 낙태권을 인정하고, 13개 주에서는 건강상의 사유가 있으면 낙태를 허용하고 있었는데 당시에도 시술비를 감당할 수 있는 여성은 낙태가 허용된 주로 가야 했다고 NYT는 설명했다.

시술비를 마련할 수 없는 많은 여성은 화학 약품이나 미숙련 낙태 시술자 등에 의존해 낙태를 시도했는데 이런 상황이 판례 파기가 현실화하면 재연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초 미국의 시카고 쿡 카운티의 병원에서는 무허가 낙태 과정에서 생명이 위협을 받을 정도의 위험을 겪으며 치료를 받은 여성이 연간 4,0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와 달리 인터넷 암시장을 통해 최대 임신 10주까지 임신중절이 가능한 알약을 주문하기가 쉬워졌으므로 의사의 처방전이 없는 알약 밀거래가 성행할 수도 있다고 NYT는 짚었다. 이 밖에도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무효가 되면 미국 가임기 여성의 42%가 있는 22개 주에서 낙태 시술소가 더는 운영하지 않게 될 것으로 NYT는 전망했다.

여론조사 기관 갤럽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평균적으로 미국인 10명 중 6명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지지했고, 10명 중 8명은 어떤 상황에서든 낙태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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